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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파도키아'神이 빚은 세상을 만나다

글·사진  김용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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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정말 쥑이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나왔다.

 
카파도키아 카이세르공항에서  괴레메 시내로 들어서자 기암괴석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기 전에 카파도키아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산등성이마다 버섯 모양의 바위가 불쑥불쑥 솟아 있고 그 안에 석굴 모양의 움집이 보이고 주변에는 숙소로 보이는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산등성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계곡이 펼쳐졌다. 확 트인  계곡 사이에는 삐죽삐죽 솟아오른 붓대처럼 생긴 바위들이 마치 고대 유적의 기둥을 발굴한 것처럼 계곡에 기대어 반쯤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자체로도 신비스러웠다. 들판에는 노란 색깔의 이름 모를 들꽃이 생기있게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산등성이 오른쪽으로는 광활한 지평이 펼쳐지고 저 멀리 설산이 나직이 엎드려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건너편 산등성이  바위에는 움막집처럼 보이는 석굴들이  여기저기 뻥뻥 뚫려 있었다. 바위 아래에는 조랑말들이 무리 지어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터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카파도키아. 이곳은 신비스러운  기암괴석과 열기구 투어를 비롯해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터키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에 오기 위해서는 교통수단이 수월하지가 않다.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자유여행객이라면 이곳까지 오는 교통수단과 일정을 잘 세워야 한다.
 

 

 

 
나는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카이세리 공항으로 가는 터키항공을 이용했다. 비행시간만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버스를 타면 10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코스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요즘에는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를 갈 때에는 카이세리 공항보다는 네브셰히르 공항을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네브셰히르 공항은 카이세리 공항보다 카파도키아 투어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괴레메 지역과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카이세리공항에서 괴레메까지는 보통 1시간 정도가 걸리지만 네브셰히르 공항에서는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카이세리공항이나 네브셰히르공항에 도착해서 괴뢰메까지 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공항 픽업 서비스를 사전에 예약해 두는 것이 편리하다. 대중교통수단이 원활하지 않은 이곳에서 공항 픽업 서비스는 숙소를 찾아가는 데도 편리하다.
 
대부분의 공항 픽업 전문 회사나 숙소, 또는 여행사 등에 신청하면 숙소까지 편하게 올 수 있다. 열기구 투어나 그린 투어 등을 하면 공항 픽업 서비스를 무료로 해주는 여행사도 있다. 공항 픽업 서비스는 보통 1인당 15~50유로 정도 한다.
 
 

 

도착 첫날은  짚사파리 투어에 몸을 실었다. 괴레메에 오전 10쯤에 도착하고 보니  그날 할  수 있는 것은 짚사파리 투어가 유일했다. 4인승 지프에 혼자 타고 보니 조금 썰렁한 느낌은 들었지만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악지대를 들어서면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오고 기사가 느닷없이 "액션"을 외치면서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그재그로 달리기 시작한다. "어이쿠 웬 날벼락이냐!"  안고 있던 카메라가 흔들리며 가슴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외마디가 터져 나왔다. "스톱~"
 
  

 

 
나는 급하게 차를 세웠다.  "난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니  스릴이고 뭐고 포토 스폿이나  다니며 안전하게 운전해주세요"  볼멘소리로 당부했다.
 
기사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 척한다. 좁은 산길을 얼마간 달려 오자  웅장한 산등성이가 보이고 광활한 계곡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레드 밸리라고 쓰인 간판과 관리 초소가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로마시대에 그리스도 교인들이 탄압을 피해 이곳에 몰려와 지하나 석굴 속에 몸을 숨기고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아직도 수천 개의 기암에 굴을 뚫어 살았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이곳의 기암은 약 3백만 년 전 화산 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으로 생긴 것들이다. 대부분이 잿빛 응회암이 뒤덮여 있고 오랜 풍화 작용으로 특이한 암석 군을 이루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적갈색, 흰색, 주황색을 띠기도 하고 크기도 암석 하나의 높이가 수백 미터에 이르는 곳도 많다.

 


 

 
5월 중순인데도 이곳의 날씨는 무척 더웠다. 섭씨 30도를 오를 내리는 것 같았다. 태양은 강렬하고 그늘막은 없었다. 포토 스폿이라고 알려주는 곳으로 가면 다행히 음료수와 간단한 다과를 파는 휴게소들이 있었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니 더위가 다소 누그러졌다. 기사에게도 음료수를 전하니 손을 저어 사양한다. " 지금은 라마단 기간이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오늘 저녁이 되면 라마단이 끝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천박한 땅을 찾아 석굴이나 지하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그리스도 교인이나 종교적 규율을 엄격히 지키며 살고 있는 현대의 이슬람 교인이나 그들의 신앙심에 고개가 숙여졌다. 

 


 

 
오후 6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일몰 시간은  보통 오후 8시를 넘겨야 한다고 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그 유명하다는 항아리 케밥을 먹어 보기로 했다.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마을 입구의 항아리 케밥집을 찾았다. 
 
다른 자리에  한국인 여성 서너 명이 역시 항아리 케밥을 먹고 있었다. 주인인 듯한 백발의 노인이 주문을 받았다. 나는 소고기 케밥을 시켰다.
 
 
십여 분 지나자 항아리 케밥이 나왔다. 주인은 가져온 항아리 케밥의 뚜껑을 나무망치로 몇 번 두드렸다. 음식물이 왈칵 쏟아져 접시에 흘러내렸다.
 
음식의 색깔이며 들어간 재료들이 우리나라의 된장국 같았다 두부도 먹음직스럽게 섞여 있고 소고기며 토마토 호박 같은 야채들도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국물 맛도 된장국과 흡사했다. 며칠 한식을 먹어보지 못한 터라 맛있게 싹싹 비웠다.
 
하지만 저녁 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한국인 손님을 빼면 한가했다. 한국인이 주요 고객인 식당이었다.
 
 

 
카파도키아의 중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괴레메는 터키 독립전쟁 이후 그리스로 쫓겨난 원주민들의 자리를 터키인들이 차지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괴레메 지역만을 놓고 보면 인구가 4~5천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카파도키아 지역을 투어할 수 있는 여행사나 대부분의 숙박시설이 이 지역에  몰려 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한적한 시골 마을 풍경을 보여준다.
 

 

 

 
식사만 하고 숙소에 들어가려다가 괴레메 번화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의 번화가라고 해야 버스터미널 부근의 카페나 레스토랑이 밀집된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이곳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는 의외로 손님들이 많았다.
 
식당마다 현지인과 여행객들로 붐볐다. 손님이 제법  많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맥주를 시켰다. 이곳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보다 식사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이스탄불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도 종교적인 이유 때문인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를 않았다. 대부분이 식사를 하고 국민차라고 할 수 있는 홍차를 주로 마셨다.
 
터키의 맥주값은  다른 음식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가격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비싼 곳도  많은 것 같았다. 이스탄불에서는 우리나라 마트에서 4병에 10,000원인 수입맥주를 1 병에 10,000원 정도에 파는 곳도 있었다.
 
괴레메의 레스토랑에서도 하이네켄 1 병에 8,000원 정도 했다. 이스탄불이나 이곳의 일반 마트에서는 아예 술을 팔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기에는 맥주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병 한 병 추가해 마시다 보니 적정량을 넘겨 취기가 오른 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어둠이 가시기 전에 호텔 로비로 나왔다. 새벽 5시에 열기구 투어 여행사에서 픽업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자 벤츠의 중형버스가 픽업을 하러 왔다. 버스에 올라타자 "굿모닝"하는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먼저 타고 온 외국인들이다. 외국인들의 예절이나 배려심은 너무나 익숙한 것 같다.
 
여행을 하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스치게 되는 인연에도 그들은 먼저 인사하고 다가온다. 처음에는 그런 인사말이나 배려하는 행동들에 당황하거나 어색했었는데 요즘은 먼저 인사하고 나선다, "굿모닝" 이젠 자연스럽다.
 

 

 

 
픽업 차량은 몇 군데 숙소를 더 들려 손님들을 픽업하고 열기구를 띄우는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 양옆으로 엄청난 수의 열기구들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여기서도 중국 여행객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전용 열기구까지 있는 듯했다. 차이나의 위력을 실감했다. 우리가 타는 열기구에는 한국 사람은 나뿐이었다. 바구니는 4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한 칸에 4인이 포개지 듯 들어갔다. 
 
 간단한 유의 사항에 대한 영어 설명이 있고 드디어 열기구의 하늘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늘은 어느새 여명의 붉은빛에서 서서히 파란빛으로 제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걷히지 않은 구름 사이로는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햇살이 긴 손을 뻗어 대지를 움켜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열기구를 처음 대할 때는 고소공포증이 밀려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열기구가 점화되고 하늘의 제자리를 찾았을 때는  공포는커녕 비좁은 몸을 움직이며 이곳저곳 사진 촬영하기에 바빴다.
 
 

 

 
하늘에서 보는 계곡은 거대함이라기 보다 동화 속의 놀이터를 연상케 했다. 어디에선가 요정이 나타나 요술지팡이로 마을을 만들고 집을 짓고 꽃밭도 여기저기 심어놓은 것만 같았다. 아침 햇살도 장관이었다.
 
열기구가 햇살의 방향을 따라 도는 것 같았다. 강렬할 것만 같은 햇살은 부드럽게 카메라의 조명 구실을 톡톡히 해주었다. 어두운 계곡은 밝게 해주고 밝은 곳에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조명을 비추어 주었다.

 


 

 
수백 개의 열기구가 동시에 하늘 떠올랐을  때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아름답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인간이 신에게 보내는 선물 같았다.
 
어떻게 이런  작은 마을에서 밤새 어디서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나타나 수백 개의 열기구를  동시에 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니 신기하기만 했다.  요술 같은 열기구의 하늘 여행은 한 시간 반 정도 비행하다 날이 밝아질 때쯤 끝났다.
 
열기구가 지상에 착지할 때는 뒤따라온 전용 차량의 화물칸에 정확하게 내려앉는다. 상당한 수준의 조정 기술이다. 내가 탄 열기구의 기장은 이탈리아 여성이었다.
 
비행을 끝내고 내려오면 그 자리에서 와인병을 터트리며  비행의 성공을 자축하는 이벤트가 있고  승합차를 이용해 각자의 숙소로 데려다준다.
 

 

 

 
열기구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기념으로  투어의 내용을  적은 리플릿을 나눠준다,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고 투어에 대한 방법 등을 적어 넣은 것이다.
 
열기구가 뜨기 전에 기념 촬영을 해준다. 물론 투어가 끝나면 10,000 원 정도의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열기구 비행이 끝나고  숙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가 그린 투어에 나섰다. 한국어를 잘하는 현지 여성이 가이드를 맡았다.
 
한국어로 간단한 농담까지 할 정도로 쾌활한 여성이었다. 그린투어는 카파도키아의 외곽을 도는  트레킹 코스였다. 데린쿠유 지하 도시- 으흘랄라 계곡-셀리메 수도원- 우치아르 비둘기 계곡을 돌아오는 반나절 코스였다.
 
 

 

이곳의 투어 차량은 대부분이 벤츠 중형버스로 이동하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시골마을을 한참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데린쿠유 지하 도시라는 곳이었다.
 
이곳 역시 괴레메 지역의 석굴 움막에서 살던 그리스도 교인과 같이 고대 로마 시대에 종교적 탄압을 피해 그리스도 교인들이 살았던 거주 지역이다. 개방된 지하시설에는 부엌과 와인 저장시설 등이 있었지만 특별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몇 만 명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많은 인구가 모여 살았다고 하지만 도시라고 하기에는  단순한 지하 거주시설처럼 보였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으흘랄라 계곡이었다. 계곡을 따라 냇물이 흐르고 그 길을 따라 점심 식사를 하는 장소까지 무작정  걸어야 하는 트래킹 코스였다.
 
이 코스는 관광 코스라기보다는 밋밋한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무작정 걸어야 하는 체력 단련 코스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이 코스보다 이곳까지 오는 중간중간 보였던 설산과  마을 풍경이 더 이채로웠다.  카파도키아 지역의 시골 풍경을 차창 너머나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카파도키아 지역에  들어서면 우선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산이다.  해발 3917미터의 에르지예스산이다. 이 산의 화산 분출로 카파도키아의 용암층이 생겨났다는 전설 같은 산이다.
 
수백만 년 전 이 설산에서 뿜어낸 화산의 용암층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고 다져지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한 것이라고 하니 이 지역의 어머니와도 같은 산이기도 하다.
 
 

 

 
그 다음이 투어 지역을 오고가다 만나게 되는 이 지역의 크고 작은 마을과 시골 풍경이었다. 이스탄불에서도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컸던 터라 이곳 마을 풍경은 더없이 흥미로웠다.
 
터키인들의 생활수준은 놀라웠다. 주택만 보아서는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아파트도 고층보다는 5층 정도로 아담했고 모두가 신축 건물처럼 깨끗했다.  농토 한가운데 있는 농가도 깨끗하고 큼직큼직막 했다.
 
저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천박한 환경에서  축산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며 그러한 주거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으흘라라 계곡 식당에서 생선구이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셀리매수도원으로 향했다. 한낮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그늘막 하나 없는 돌산 중간중간에 굴을 파서 생활했다는 수도원은 그 시절의 흔적들이 여러 군데 남아 있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석굴  천장에 그려 넣은 코스프레화가 아직도 생생한 색상을 유지한 채 남아 있었다.
 
취사로 시커멓게 변한 석굴 안에는 십자가를 비롯해 뜻 모를 성화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도 신앙심 하나로 고난의 시간을 보냈을  당시의 그리스트교인들의 의지가 놀라울 뿐이었다.
 
 

 
석굴에는 고대 로마 시절 그리스도교의 박해를 피해온 유럽인들뿐만 아니라 몽골 등 아시아계 사람들도 많이 넘어와 살았다고 한다.
 
이 지역이 실크로드의 중간 지대여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카파도키아에는 현재 100여 개의 석굴 교회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석굴 교회들은 지상의 교회와 같이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고 한다.
 
교회의 천장에 그려넣은 프레스코화나 다른 성화의  보존 상태도  좋고 내부의 장식도 아름답다고 한다.
 

 

 

 
그린투어의 마지막은 비둘기 계곡이었다.  어둑어둑 해가 떨어질 무렵에 도착했지만 모두들 사진 촬영에 열중이었다.
 
이곳 역시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비둘기 계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둘기 떼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카파도키아의 마지막이될 기념으로 산등성이 마을 위로 서서히 넘어가는 황홀한  붉은 석양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입력 : 2019-10-05]   김용길 여행작가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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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 여행작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홍보실을 거쳐 중앙일간지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이후 편집회사 헤드컴을 운영하며 국내 공공기관·기업체 사보 등 2000여권의 홍보물을 편집·제작해왔다. 현재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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