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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을 숭모하는 원로 日本人의 韓日갈등 해법

“김종필의 줄탁동기 지혜 배워야...안중근은 한국의 진정한 영웅”

글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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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아 3000명을 돌본 윤학자 여사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주장한 것도, 전라남도와 고치현이 자매결연한 것도 니시모리 명예회장의 공(功)이다. 이런 인연으로 당시 이낙연 전라남도지사는 그에게 ‘전라남도 명예도민’으로 위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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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아의 어머니, 다우치 치즈코(한국명 윤학자)의 탄생지 비(碑). 사진=장상인

한일(韓日)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수십 년간 일본을 오갔지만 300석이 넘는 대형 여객기에 빈 좌석이 이렇게 넘쳐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 때의 일이다.
  
필자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를 거쳐 시코쿠(四國)의 고치현(高知縣)을 방문하기로 돼 있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없었다. 1시간 30분간 비행 후 일본 고치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먼 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75대, 제87대 고치현의회 의장을 지낸 니시모리 시오조(西森潮三·78)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고치현 일한(日韓)친선협회 명예회장과 日韓우호촉진 고치현 의원연맹 명예회장의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의 또 하나의 직함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전라남도 명예도민’
   
그와 악수를 나눈 후 한국 고아(孤兒) 3000명을 친히 돌봤던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尹鶴子·1912~1968·일본명 田內千鶴子) 여사의 탄생지로 갔다. 탄생지를 알리는 비석은 아오야기(靑柳)다리 옆 고즈넉한 곳에 서 있었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 田內千鶴子生誕之碑’
       
한글과 일본어로 새겨진 비문은 이렇게 돼 있었다.
   
<고치시 와카마쓰초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양친과 함께 한국 전라남도 목포시로 건너갔다. 한국인 기독교 전도사 윤치호와 결혼해서 그가 창설한 공생원에서 고아들을 길러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지고 전후의 혼란에다 남북전쟁이 터져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는 커다란 시련에 시달리면서도 3천명의 고아를 지키고 길러내어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고 칭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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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에 새겨진 글. 고치시 와카마쓰초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양친과 함께 한국 전라남도 목포시로 건너갔다. 한국인 기독교 전도사 윤치호와 결혼해서 그가 창설한 공생원에서 고아들을 길러냈다.

      
비문을 읽고 있는 필자에게 니시모리(西森) 씨가 다가와서 말했다.
    
“이 돌은 모두 목포에서 가져왔습니다. 10톤 정도의 무게였습니다. 이것을 들여오는 데도 사연이 많았습니다. 이 자갈의 숫자도 삼 천 개입니다. 삼천 고아를 상징한 것이지요."
    
이 비(碑)는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세워졌다. 니시모리(西森) 씨는 ‘한국 고아의 어머니’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기온은 30도. 필자가 “날씨가 더우니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했으나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 비석이 바라보는 방향이 바로 목포입니다. 고인의 마음이 항상 목포를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언뜻 보기에도 비석 방향은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았다. 비석이 바라보는 방향이 엉뚱한 곳을 향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니시모리 씨의 설명을 듣고서 의문점이 풀렸다.
  
“무엇이 그녀를 목포로 불렀을까?"
      
“다우치 여사의 ‘따뜻한 마음’일 것입니다. 조선총독부 관리의 딸이 거지대장으로 불리는 윤치호 씨와 결혼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해방 후 ‘쪽발이’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굳건하게 3000 고아를 길러냈으니까요. 저는 일한(日韓) 합작으로 제작된 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보고서 이 비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모금운동을 벌였습니다."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도 니시모리 씨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온몸에 땀이 주르르 흘렀으나 공기가 맑았고, 자연이 아름다웠으며 대화의 내용이 좋아서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안중근을 인정해야 日韓관계 매듭 풀려

   
호텔에 짐을 푼 후 니시모리 씨와 함께 낡은 전차(電車)를 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전차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보라는 배려였다. 130년이 넘은 전차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면서도 잘 달렸다.
 
‘계절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점을 강조하는 식당의 테이블에 필자와 니시모리 씨는 마주 앉았다. 생맥주로 건배하고 나서 ‘삼천 고아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와 제2대(代) 주한(駐韓) 일본대사를 지낸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1909~1997) 씨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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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펼쳐보이는 니시모리씨.

  

잠시 후 그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다름 아닌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친필 유묵(遺墨)이었다.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독실하고 겸허함이 있으면 야만의 나라에서도 따르는 이 있을지니.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수감됐던 감옥의 고치현 출신 간수(八木正禮)가 보관해 오던 것을 그의 손자 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가 2002년 10월 한국의 안중근 의사 숭모회(崇慕會)에 기증한 것입니다."
   
니시모리 씨는 “이것은 진품이 아니고 복사본입니다"면서 길게 펼쳐보였다.
  
“안중근 선생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테러리트죠.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진정한 영웅입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넘어뜨린다는 것은 불타는 애국심(愛國心)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숭고한 가치를 인정해야 일본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니시모리 님의 말씀을 기사화해도 괜찮을까요?"
  
“상관없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으니까요."
 
그는 힘주어 말했다.
   
“또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제가 식민지배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영국·프랑스·포르투갈 등 유럽의 열강들도 아시아와 남미·아프리카 등에서 식민지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찬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에 대해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도 정치인 출신이지만 정치를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일본이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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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모리 씨는 고(故) 김종필(金鍾泌) 총리의 친필 '줄탁동기'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韓日갈등 푸는 열쇠, 줄탁동기5-78654.jpg 解答 있어
    
니시모리 씨는 고(故) 김종필(金鍾泌) 총리로부터 받았다는 글 하나를 소개했다.
   
‘줄탁동기’
   
“이 글의 뜻 아시죠? 김종필 전 총리와 열흘 동안 한 방에서 기거하면서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 병아리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달걀 껍데기를 쪼아야 한다는 뜻 아닙니까?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바로 이런 관계’라는 고인(故人)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니시모리 씨는 한국을 방문할 때면 필히 안중근기념관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43년 전 일한(日韓)친선협회를 설립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양국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윤학자 여사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주장한 것도 니시모리 명예회장의 공(功)이고, 전라남도와 고치현이 자매결연한 것도 그의 노력 덕분이다. 이런 인연으로 당시 이낙연 전라남도지사는 니시모리 씨에게 ‘전라남도 명예도민’으로 위촉했다. 2015년의 일이다.
    
일본의 지식인들 중에는 아베(安培晉三) 정권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도 있다. 이들은 "한국과 잘 지내지 못하면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강조한다. 민간 교류의 확대를 통해 양국의 간극(間隙)을 메워야 할 듯싶다.
   
‘줄탁동기’라는 말이 길게 여운을 남긴 ‘뜨거운’ 하루였다.
 

[입력 : 2019-09-18]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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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30년 넘게 현해탄을 넘나들며 일본인들과 교류하고 있는 홍보컨설팅회사 JSI파트너스의 대표다. 일본비즈니스 전문가로도 정명이 나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육군 제2훈련소 교관(ROTC11기)으로 군(軍) 복무했다.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대우에서 보냈다. 대우건설 재직시절 철옹성 일본 건설시장의 문을 열었다. 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에 이어 팬택계열 기획홍보실장(전무)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지금의 JSI 파트너스 대표이사로 있다. 일본의 정계·관계·업계·언론계 등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다. 한편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칼럼니스트로 여러 매체에 일본 관련 글을 쓰고 있다. 특히 일본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현장을 직접 보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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