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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롯데’를 사랑했던 巨人 신격호, 123층 월드타워 ‘꿈’ 이루고 영원히 잠들다!

화려함 멀리하고 실속 추구해온 去華就實...“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 이뤄야”

글  김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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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1921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1948년 일본 도쿄에서 롯데홀딩스의 전신인 롯데를 창업했다. 사진은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 신동빈 회장. 사진=롯데지주

대한민국 재계를 이끌어온 창업 1세대의 마지막 거인(巨人)이었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월 19일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롯데그룹은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며 “노환으로 입원 중이던 신 명예회장은 지난 18일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다. 19일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오후 4시29분쯤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일본 출장에서 급히 귀국했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고인 곁을 지켰으며 그룹 주요 임원진도 병원에 집결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는 서울아산병원에서 4일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1월 22일 오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와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장례위원장을 맡고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고인(故人)은 1921년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나 세 명의 부인 사이에 2남2녀를 뒀다.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은 고(故) 노순화씨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가 고인은 1941년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후 시게미쓰 하스코와 결혼해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 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회장을 뒀다. 고인은 미스롯데 출신 서미경씨와 사이에서 막내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도 낳았다.    

 

고인은 껌으로 시작해 높이 555m짜리 롯데타워를 건립하는 등 유통, 화학, 건설 등 산업 전 부문에 걸쳐 사업을 펼쳤다. 수많은 사업을 철두철미하게 챙긴 것으로 유명한 그는 "껌은 23개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 1만5000종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1만5000가지 제품 특성과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 가격을 알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고인은 롯데를 국내 재계 5위로 성장시킨 ‘자수성가형 창업가’였다.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와세다대학교 화학과에서 학업을 마쳤다. 당시 얻은 이름이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였다.
 
고인은 당시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껌이 인기를 끌자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지은 회사명이 ‘롯데’다. 껌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성공해 당시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세우고 회사 이름을 '롯데'로 지었다. 문학에 빠져있던 신 명예회장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왔다.
     
1961년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되자 초콜릿 만들기로 결심하고 초콜릿 산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했다. 이후 사탕,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 잇따라 손을 댔고 모두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롯데그룹을 건설했다. 고인은 1959년 롯데상사, 1968년 롯데물산, 1969년 롯데 오리온스 구단, 1972년 롯데리아, 1988년 롯데냉과 등의 계열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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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12일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고인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정부의 투자 요청을 받고 1967년 4월 국내에 롯데제과를 세우고 껌을 생산하며 진출했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춘 롯데는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고인은 평생 사업을 하면서 ‘사명감’을 특별히 강조했다. 1967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롯데제과를 만든 뒤 처음 했던 말이 "기업 이념은 품질 본위와 노사 협조로 기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다. 경영원칙은 이해와 상식, 그리고 철저한 준비였다.
  
고인은 2004년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 경영원칙은 세 가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업에는 절대로 손대지 않고 이해가 되는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철저히 조사하고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에 실패해도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금을 차입한다."
       
고인의 집무실에 액자로 걸려 있던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는 문구는 생전 삶의 태도를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을 알아야 한다"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고인은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 한동안 혼자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탔을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회장과 달리 소박한 사무실을 써온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이 관광보국(觀光報國)의 신념 하에 롯데타워 건설에 전력을 다했고 마침내 이뤄냈다. 그는 "한국의 장래를 깊이 생각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며 "서울 잠실의 롯데타워를 세계 최대의 관광명물로 만드는 것이 내 일생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관광보국의 꿈을 갖고 롯데월드타워를 계획했던 고인은 2017년 4월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오픈하며 30년 숙원사업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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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2004년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 경영원칙은 세 가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업에는 절대로 손대지 않고 이해가 되는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철저히 조사하고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에 실패해도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금을 차입한다."

고인은 건강이 악화하면서 말년을 힘들게 보냈다. 특히 2015년 7월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서 고인은 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서 해임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2017년 법원에서 한정 후견인을 지정받으면서 고인의 경영활동은 막을 내렸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들은 신격호 회장의 타계와 관련해 애도의 입장을 내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인이 롯데그룹을 성장시키며 보여준 열정과 도전정신은 지금까지도 많은 기업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며 "신격호 명예회장은 해방 직후인 1948년 일본에서 롯데그룹의 창업 기틀을 다진 후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기업보국의 기치 아래 모국산업에 투자해 국내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를 구축하는 등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영계는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고인의 말씀과 기업가 정신을 본받아, 우리 국가 경제와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반세기 넘게 한국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에 헌신한 신격호 회장이 별세한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신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선구자였고, 창업 1세대 기업인으로서 선구적인 안목과 헌신을 통해 롯데를 국내 최고의 유통·식품 회사로 성장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비스·관광·석유화학 분야까지 사업의 범위를 넓히며 다양한 영역에서 대한민국 산업의 기틀을 닦았다"며 "기업보국의 신념을 바탕으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에 아낌없이 투자한 회장님의 헌신은 산업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를 재건하고 경제를 부흥시키는 초석이 됐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최근 한일 관계가 어렵다"며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칭만큼 한일 양국간 경제 교류에 힘써준 신 회장의 타계는 우리 경제의 큰 아픔과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경제계는 고인이 평생 강조한 '기업보국'과 '도전의 DNA' 정신을 이어받아 기업가 정신을 높이고 우리 경제와 국가 발전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고인은 선구적 투자와 공격적 경영으로 국내 식품.유통.관광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그룹 임직원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는 "무역업계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 신격호 회장은 '창업 1세대 경영인'으로 한국과 일본의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등의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양국의 경제·교류 관계 강화에도 힘썼다"고 평가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고 신격호 회장은 불모지였던 국내 유통산업인 백화점을 개척했다"며 "중소기업의 판로확대에 기여하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호텔분야를 선구적으로 개척하는 등 서비스 산업발전의 큰 획을 그으신 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다음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년) 연보다.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부친 신진수 씨와 모친 김필순 씨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출생 (주민등록상 생년월일. 실제로는 1921년 11월 3일 출생)
▲1939년  울산농업전수학교 졸업
▲1940년 고(故) 노순화 씨와 결혼
▲1942년 일본행
▲1946년=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 화학과 졸업
▲1967년=한국 롯데제과(株) 설립으로 모국투자 시작
▲1973년 호텔롯데 설립
▲1974년 칠성한미음료 인수, 롯데칠성음료로 상호 변경
▲1978년 삼강산업 인수, 롯데삼강으로 상호 변경 (현 롯데푸드)
▲1978년 롯데햄ㆍ우유 설립 (현 롯데푸드)
▲1978년 평화건업사 인수, 롯데건설로 상호 변경
▲197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1979년 호남석유화학 인수 (현 롯데케미칼)
▲1979년 롯데리아 설립 (현 롯데지알에스)
▲1979년 롯데쇼핑 설립
▲1981년 동탑산업훈장 수훈
▲1982년 롯데자이언츠 설립
▲1983년 롯데장학재단 설립
▲1985년 롯데캐논 설립 (현 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
▲1987년 롯데월드사업본부 설립
▲1994년 롯데복지재단 설립
▲1995년 관광산업계 최초로 금탑산업훈장 수훈
▲1998년 롯데쇼핑 마트사업본부 설립
▲1999년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 설립 (현 롯데컬처웍스)
▲2000년 롯데닷컴 설립 (현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본부)
▲2002년 롯데경제연구소 설립 (현 롯데미래전략연구소)
▲2002년 동양카드 인수, 롯데카드 출범
▲2004년 케이피케미칼, 케이피켐텍 인수
▲2005년 현대석유화학 2단지 인수, 롯데대산유화 설립          
▲2007년 우리홈쇼핑 인수, 롯데홈쇼핑으로 채널명 변경
▲2007년 롯데백화점 러시아 모스크바점 오픈. 백화점 업계 최초
 해외 진출
▲2007년 중국 마크로 인수
▲2008년 대한화재해상보험 인수, 롯데손해보험 출범
▲2009년 비전 2018 선포
▲2009년 두산주류비지 인수, 롯데주류비지(현 롯데칠성음료 주류비지) 출범
▲2009년 롯데삼동복지재단 설립
▲2010년 말레이시아 ‘타이탄’ 인수
▲2010년 롯데호텔 러시아 모스크바점 오픈
▲2012년 하이마트 인수 (현 롯데하이마트)
▲2015년 케이티렌탈 인수 (현 롯데렌탈)
▲2016년 삼성SDI 케미칼사업본부, 삼성정밀화학, 삼성비피화학 인수 (현 롯데첨단소재, 롯데정밀화학, 롯데비피화학)
▲2017년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프닝
▲2017년 한국롯데 창립 50주년, 뉴 비전 선포 롯데지주 설립
▲2019년 롯데케미칼 미국 ECC 공장 완공
▲2019년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매각 지주사 행위제한 요건 해소
 
 
 
 

 

[입력 : 2020-01-20]   김명규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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