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월 2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그룹 신년회’에서 “미래 생존이 불확실한 서든 데스(Sudden Death)시대에서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딥체인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껍질을 깨는 파격적 수준의 비즈니스 모델(BM) 혁신이 딥체인지의 핵심"이라고 했다.
최 회장이 이날 언급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더블 바텀 라인(DBL)’은 이후 그룹 전체의 핵심 화두가 됐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2019년 5월 21일,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16개 주요 관계사가 2018년 한 해 동안 창출한 ‘사회적 가치’ 측정결과를 이날부터 순차적으로 일반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회사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에 대해 SK측은 “재무제표를 각 사별로 공개하듯, 사회적 가치 역시 각 사 별로 공개하기로 했다"며 “공표 방식과 시점은 각 사별로 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 때 밝히거나 지속가능보고서에 기재하는 등 자율로 정하게 된다. 앞으로 매년 측정 결과를 공개하고 관계사별 경영 KPI(핵심평가지표)에도 50%를 반영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SK는 지난 5월 21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사옥에서 언론 설명회를 열고 사회적 가치 측정 취지와 방식, 주요 관계사 측정 결과, 향후 계획 등을 공개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 위원장은 “SK가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이유는 기업이 경제적 가치와 마찬가지로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지표와 기준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SV는 Social Value(사회적 가치)의 약자다.
최태원 회장은 그동안 “측정(measure)할 수 없는 것은 관리(manage)될 수 없다"는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하며 ‘사회적 가치’ 측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SK그룹은 5월 28일에는 ‘사회적 가치’와 관련해 대대적인 행사를 펼쳤다. 이른바 ‘사회적 가치’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소셜밸류커넥트 2019(Social Value Connect 2019·이하 SOVAC)’를 연 것이다. 회사 측은 “첫 회부터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고 홍보했다.
SK 측은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SOVAC 2019’ 행사에 기업인, 비영리단체 회원, 대학생, 일반인 등 4000여 명이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초 행사 참여 인원을 최대 2000명 선으로 예상했는데 배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고 했다. SK 측은 지난 5월 21일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참가 등록 인원이 5000여명을 넘어서자 행사장 안전문제 등을 고려해 사전 등록 접수를 마감했다고 한다.
이날 열린 ‘SOVAC 2019’ 행사의 핵심주제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사회적 가치의 시대가 온다’였다. 회사 측은 “사회적 가치는 환경 오염, 일자리 부족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해결된 성과를 말한다"며 “그동안 주로 정부와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 추구 활동이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일반 기업과 개인들까지 힘을 보태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뜨거운 행사 참가 열기는 사회문제 해결을 더 이상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OVAC은 지난해 말 최태원 SK회장이 제안하고 80여 개 기관, 단체가 파트너로 나서 호응하면서 마련됐다. SK 측은 “이 행사가 첫 해부터 대박을 터뜨리면서 향후 ‘사회문제 해결 위한 모두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관심이 한층 확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행사 마무리 발언을 통해 “SOVAC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가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공감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연결’과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행사제안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지속가능 해야 회사도 지속가능 할 수 있고 개인의 행복도 담보될 수 있다"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우리의 뜻과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를 두고 그룹 내에서는 실망감이 적잖게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이 ‘동거녀’ 김희영 티앤씨(T&C)재단 이사장으로 인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됐다는 ‘솔직한 발언’을 한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다.
최 회장은 당일 행사장에서 “회장 최태원이 아닌 인간 최태원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됐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사회적 가치 추구에 눈을 뜬 계기에 '저와 반대였던 사람' 때문이었다"고 준비한 듯 말했다. 최 회장의 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회장으로 취임했던 21년 전에는 IMF 사태, 아시아 금융위기로 상당히 어려웠다. 나는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독한 기업인이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공감능력이 제로였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 사람을 보지 않고 모든 것을 일로 봤다. 그러다보니 내 가슴은 텅 빈 것 같았다. 그때 나와 아주 반대인 사람을 만났다. 돈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오직 사람만을 향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관찰해보니 제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았고 그때부터 새로운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다. 따뜻한 감성을 받았고, 영리 기업도 사회적 가치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기업의 문제가 무엇인지, 측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최 회장의 이날 발언은 사전에 준비된 것 같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날 최 회장의 ‘솔직담백한 고백’이 그룹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언론 보도에는 “사회적 가치 축제 '소셜밸류커넥트 2019'가 각계의 주목을 받고 성황리에 끝나는 줄알았더니 회장님의 '아름다운(?) 고백' 덕분에 한마디로 한방에 망쳤다" “애써 준비했던 사회적 가치 행사의 취지가 최태원 회장의 발언으로 개인 사생활 문제로 완전히 덮혀버린 꼴이다" “내부에서도 의견이 좋지 않다" “SK의 '사회적 가치'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대중들은 그 출발점인 '그녀'를 떠올리게 될 것이란 점이 우려스럽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SK 직원들 사이에서는 남자 직원들보다는 여자 직원들의 실망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 회장의 동거인과 이혼소송 등을 바라보는 남녀 간의 정서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언론 보도에는 SK 직원들의 말을 인용해 "회사에 정이 떨어지고 낯부끄럽다. 그동안에도 회사 내에 여러 소문들이 있었는데 직접 회장의 입을 통해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최 회장의 즉흥 발언이거나 실수가 아니라 작심 발언한 것 같고 그런 질문이 나온 것도 '짜고 친 고스톱' 같아서 더욱 부아가 치민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최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씨는 1975년생으로,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이혼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 2002년생 아들을 뒀으며, 2010년경 최 회장과의 사이에는 딸을 뒀다고 한다. 현재 최 회장은 부인 노소영씨와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희영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티앤씨재단은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한 교육 공익재단으로, 지난 2017년 최 회장과 김 이사장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티앤씨라는 이름은 두 사람의 영어 이름 이니셜 'T'와 'C'를 따서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티앤씨재단은 2017년 12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공익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고 최 회장은 재단 출연금으로 20억원을 냈다. 티앤씨재단이 지난해 기부받은 액수는 30억원으로 이 또한 모두 최 회장이 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티앤씨재단의 홈커밍데이에 직접 참석해 축사와 강연을 하기도 했다.
티앤씨재단은 본격적인 법인 설립에 맞춰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담요와 수면 양말 등을 제공했다. 또 소아절단환자 의수족 지원과 장학사업 등 아동과 청소년들을 응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펼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