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어느새 하늘이 맑게 개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탁심공원 부근에 있는 숙소에서 이곳까지는 줄 곳 내리막길이었다.
이스탄불은 구릉지형이다. 도로가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막이다. 도로도 좁다. 대부분이 2차선 도로 아니면 일방통행식이다. 지형을 따라 도로가 만들어진 셈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 걸어서 다니려면 오르막길에서는 땀깨나 흘려야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신시가지의 끝자락인 보스포루스해협에 있다. 해안을 따라 600미터 정도 일자로 뻗어 있다.
'바다 위의 궁전'이란 이름에 걸맞게 구시가지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마란 터키어로' 꽉 찼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작은 만에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으니 돌마바흐체란 이름이 딱 어울린다. 궁전을 관람하는 데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무료로 제공해 준다. 여권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건설했다. 내부 인테리어와 정원도 프랑스식이다.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건축됐다. 방 285개와 홀 43개가 용도에 따라 각기 독립된 구조를 하고 있다. 궁전을 돌아보게 되면 왕비와 가족들이 생활하는 하렘이 본관 건물 내에 같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대부분의 이슬람권 국가들의 궁전에는 하렘이 별채로 독립해 떨어져 있다. 구시가지에 있는 톱카프 궁전의 하렘도 독립된 구조를 하고 있다. 하렘은 남성이나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왕비와 궁녀 또는 자녀들이 생활했던 침실과 욕실 등 은밀했던 곳도 개방해 놓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말기에 술탄들이 톱카프 궁전에서 거처를 옮겨오게 된다. 톱카프 궁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외벽 장식 등이 호화롭고 실내를 장식한 가구와 소품 등이 프랑스, 이탙리아, 영국 등에서 수입해온 것들이다. 바닥에는 터키 장인들이 만든 최고급 양탄자들이 깔려 있다.
커튼 하나에도 똑같은 것이 없다.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이 돋보인다. 이 가운데 눈여겨볼 것은 궁전 실내의 벽시계가 전부 9시 5분을 가리킨 채로 멈춰서 있다.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가 집무 중에 쓰러져 숨을 거둔 시간이라고 한다.
'터키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아타튀르크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본관을 돌아보고 나오면 우측에 미술관이 나온다. 역대 술탄들의 초상화와 전쟁의 승리를 담은 그림들이 시대별로 진열돼 있다. 이곳을 보려면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이스탄불의 중심지로 신시가지의 탁심(Taksim) 광장을 손꼽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과도 같은 곳이다.
주변에는 상점, 호텔, 여행사, 음식점 등이 밀집해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 지하철 노선인 튀넬(1875)의 정차역이며 명동과 같은 이스티클랄 거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광장 중앙에는 1928년도 세웠다는 터키공화국 기념비가 있다. 매년 신년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스티클랄 거리에 들어서면 요즘 가장 핫한 유럽의 거리를 보는 것만 같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여유가 넘친다. 누가 이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말하는가. 행복의 기운이 이방인의 가슴에도 전해져 온다.
사방에서 사랑의 메시지가 허공에 날리는 것만 같다. 오랜만에 자유의 참 맛을 느낀다. 이곳에서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없이 그냥 무작정 걸어보는 것이다.
도로 한가운데를 이곳의 명물인 빨간색 트램이 오고 간다. 아이들이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재미를 더한다. 관광객들은 그런 모습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는다. 이 거리를 오고 가다 보면 터키인들이 지독한 애연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터키에는 별다른 금연정책이 없는 듯하다. 사방이 개방된 곳에서는 장소에 개의치 않고 담배를 피워댄다. 유모차를 세워놓고 담배를 피우는 주부들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골목을 들여다보면 노상 카페가 즐비하다. 그곳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또 다른 낭만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스티클랄 거리에는 유난히 소개된 맛집이 많다. 터키 음식은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음식으로 손꼽힌다. 그 가운데서 유명한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케밥이다. 이 거리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점도 케밥집이다.
그러나 나는 달콤한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터키시 딜라이트 로쿰(Locum)을 우선 얘기하고 싶다. 터키 국민의 간식거리인 로쿰은 반드시 맛보아야 할 디저트로도 소개된다. 달달한 맛에 호불호가 있겠지만 한 번 맛을 보면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찾게 되는 맛을 지녔다.
그 달콤한 맛에 1864년에 문을 열었다는 로쿰가게를 찾아 현지들과 함께 서서 기다리다 한 통을 구해 왔다. 누군가 디저트에 대해 얘기하면 " 네가 로쿰 맛을 알기나 해" 하고 허세를 부려본다.
터키에는 길냥이들이 정말 많다. 사람이 다가가도 피할 줄을 모른다. 서로에게 피해가 없으니 그냥 무시하는 것 같다. 바짝 다가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반응이 없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터키가 길냥이들의 천국임에 틀림없다.
터키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면 거리의 악사들도 많다. 보통은 혼자지만 여럿이 나와 연주를 하는 팀들도 흔하다. 특이한 것은 노래만을 따로 부르는 사람은 보지를 못했다. 거리의 아이들도 그냥 손을 내밀지 않는다. 조잡한 악기라도 연주하며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이곳의 분위기이다.
이스티클랄 거리 끝자락에 다다르면 이스탄불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갈리탑을 만나게 된다. 그 주변은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갈리탑의 조망대에 오르려면 끈기 있게 몇십 분이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나는 그렇게 기다릴 자신이 없어 근처 카페에 들어가 진한 커피를 마시며 휴식시간을 갖는다. 자유여행의 참맛을 느끼면서 말이다.
해가 떨어질 무렵 갈리탑 언덕을 내려와 갈라타교에서 구시가지 쪽을 바라보았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 사원 너머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동양적인 정취가 물씬 묻어있다. 동서양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 이스탄불이라더니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냥 오랜 시간 머물렀다.
어둠이 내리고 건물 등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이스탄불은 색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갈리타교 아래에 있는 식당에 앉아 바라본 구시가지의 풍경은 날씨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정도 바뀐다.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둠이 깊어질수록 내일이 더욱 기다려졌다.
[입력 : 2019-09-07]
김용길 여행작가
Copyright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