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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에 대하여

“시인이란 ‘행복한 노예’와 ‘불행한 자유인’ 사이에서 끝없이 진동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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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기원을 찾아 왔다. 그것은 곧 ‘나’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를 찾기 위해 내가 아니라 나의 원인을 찾아 온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궁금해 하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불완전과 결핍이 미만해 있음을 상정한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기원을 찾는 것이고, 그 기원은 어떤 완전성을 담지한 존재여야 한다. 그것은 최소한 나의 불완전과 결핍의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기원은 하나의 원형이다. 나의 현재적 불완전과 결핍을 궁극적으로 해소시켜 줄 완전한 모범이다. 기원과 원형과 모범은 인간을 행복한 노예로 만들거나 만들어준다. 기원이 없거나 찾아갈 원형이 없다면 인간은 비록 자유로울지언정 불행에 빠진다. 현재의 근본적 불완전과 결핍의 대체재는 자유와 우발성이 아니라 원형과 그 구속임을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인지한다. 인간의 ‘기원 찾기’는 ‘행복한 노예’의 길과 ‘불행한 자유인’의 노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해 왔다.

  

루시(Lucy)는 1974년 에티오피아 아파르(Afar) 주 하다르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팔과 다리 일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완전한 형태의 유골이었다. 그녀가 살았던 시기는 대략 300만 년 전으로 추정되었다, 그녀는 인간과 유인원의 구별 조건이 되는 직립 보행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직립 보행은 두개골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입과 턱뼈가 현생 인류처럼 얼굴 안쪽으로 들어가는 형태학적 변이와 동반된 것으로 고인류학에서 매우 중시하는 인간 진화의 조건이다.

  

루시는 미국 고인류학자 조핸슨(Donald Johanson, 1943- )에 의해 최초의 어머니로 불리었지만 에티오피아 중부 아와시(Awash) 강 지역에서 발굴된 또 다른 여성(아르디, Ardi)의 화석 유골은 루시보다 무려 12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아르디는 루시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으나, 연구를 주도한 팀 화이트(Tim D. White, 1950- )는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와 공동의 조상에서 갈라진 이후 초기에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관해 불확실했던 많은 점을 해소해 주었다"고 했을 뿐 그녀를 현생 인류의 어머니로 부르지 않았다.

  

약 107cm 키에 겨우 30kg 몸무게로 추정된 작은 여성 루시는 아마도 화려한 언술의 어느 작은 남성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목숨을 건 출산을 통해 인류의 대를 이었을 것이다. 다른 동물들이 ‘현재’란 시점에 갇혀 지내는 동안 달마다 자궁내막을 배출하며 그것이 임신과 필연적 관계에 있음을 본능적으로 파악하였을 것이다. 루시는 섹스와 수개월의 시차를 두고 발생하는 생사의 위기를 겪으며 자신의 ‘미래’를 인지했을 것이다.

  

직립보행과 더불어 급속도로 커져 가는 태아의 뇌는 모체의 높은 사망률을 유발했고, 때문에 인간 여성은 성적 결정권을 필요로 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결정적인 사람이다. 현재의 선택에 따라 미래의 생사가 갈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여성 앞에서 남성은 유혹의 대가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DNA를 전파하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고, 그것이 곧 인간 언어의 고도화를 유발했다는 주장은 유력하다.

  

그렇다면 언어 발달의 강력한 동기는 ‘모성 사망’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의 뻥쟁이가 미래의 생명을 조건으로 섹스를 하기 위해 더욱 탁월한 뻥을 치는 과정에서 인간 언어가 난숙해졌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도구제작, 양육, 수렵 등이 다인적으로 기여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러한 언어 발달의 동인에도 불구하고 인간 신체의 해부학적 조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정교한 언어는 구사할 수 없다. 정교함을 위해서는 여러 장기들이 관여하는 복잡한 호흡 시스템이 필요하며, 이를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뇌의 신피질 조직이 전제되어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신경 다발이 머릿속에 구축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여성이 목숨까지 걸어야 할 정도로 태아의 머리통이 커진 요인이기도 하다.

  

  

“좌뇌의 집행부는 중요한 말이 있다고 결정하기 직전에 먼저 호흡주기의 중지를 명령하여 공기를 저장해 두도록 명령하는데, 이것이 폐에 압력을 증가시킨다. 말을 생산하는 공정 라인은 가슴 깊숙한 곳 횡격막 층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좌뇌에 있는 브로카 영역(Broca's area, 대뇌 좌전하부에 있는 언어의 운동중추)이 - 이 전문 신경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 - 늑골과 가슴 근육들이 가둬 놓았던 공기를 조금씩 조심스럽게 방출하도록 지시한다. 이 날숨은 이후의 공정에서 곧 날카롭게 연마될 말의 원재료를 제공한다. 다음에는 끝내주게 복잡한 우리의 발성기관들(후두, 성대, 인두, 혀, 코, 콧구멍, 치아, 입술)이 작업에 들어간다. 가공되지 않은 소시지 주머니처럼, 공기가 휙 하는 소리를 내며 기도를 빠져 나온다. 이제 말 공장 조립라인에 있는 각 노동자들이 흘러가는 날숨을 자르고, 주무르고, 조작하고, 포장해서 1000분의 1초 만에 명료한 단어로 만들어내야 한다."
- Leonard Shlain(1937-2009), 『지나 사피엔스』(Sex, Time and Power) 중에서

  

  

머리통과 섹스와 임신과 출산의 악연은 인간 언어를 정교하게 하고, 강화하고, 수많은 뻥쟁이를 낳았다. 인간 언어의 탄생과 발달에는 해부학적 기초와 더불어 유전자 전파의 본능이 게재돼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비록 거짓말일지언정 노래(시)보다 출발 시기가 앞서는 위엄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전히 노래의 연원을 궁금해 하는가. 직립 보행으로부터 600만 년, 루시로부터 300만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왜 시의 기원을 찾는가.

  

  

     기원을 묻는다면
     바이칼이거나 부리야트*거나 어떤
     동종 교배와 족외혼의 기원을 묻는다면
     미토콘드리아와 핵을 넘어
     세포 넘어 분자 넘어 기원을 찾는다면
     차라리 폐호흡과 횡격막과 언어의 기원을 찾는다면
     아니면 툰드라와 스텝과 열대우림 너머
     냉혈의 대기권과 화성과 목성 너머
     태양계와 은하계 너머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를 알지 못하는
     그러므로 기원은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도 있을 필요가 없는
     어떤 기원을 믿는다면
     차라리 기원의 전체주의를
     믿음의 전제적 폭력을
     고발하기 위하여
     이겨내기 위하여
     넘어서기 위하여
     - 졸시, 「기원에 대하여」 전문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불완전한 결핍의 존재기이 때문이다. 우리의 기원은 ‘완전한 나’의 출발점이다. 나의 기원은 나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완전한 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원은 완전체이자 절대자로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진정한 구원이다. 우리가 시의 기원을 묻는다면 그것은 구원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시는 언제나 구원을 향한 메시지였다. 그래서 시인이란 ‘행복한 노예’와 ‘불행한 자유인’ 사이에서 끝없이 진동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입력 : 2019-06-23]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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