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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깥에서 달이 뜨고 별이 진다

“그의 시업(詩業)은 이 땅의 모든 시인들에게 고루 나누어졌다”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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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슬퍼해도 그가 되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문득 그 불가항력이 너무 고통스럽다. ‘세상의 바깥에서 달이 뜨고 별이 진다.’ 사진=김재홍

만일 그가 칠흑 같은 한밤에 혼자 도로변을 걷지 않았다면, 또한 모처럼 만난 선후배와의 반가운 자리에 술이 떨이지지 않았다면, 무엇보다 그 전날 가까운 한 선배가 모교 교정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이 되어 시로써 자신에게 또 사랑하는 이웃에게 구원을 손을 뻗으려 했던 한 문학청년은 그렇게 불의의 사고로 고통을 겪다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사고를 당한 때는 새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영혼과 일상이 분리되던 순간 그 선배는 신혼여행을 가고 있었다. 어쩌면 남국의 어느 공항에 막 착륙한 때였는지도 모른다. 이미 코마(coma)에 빠진 그가 세상과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 선배는 태평양 산호섬의 이국풍을 희희낙락 즐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한밤의 술자리를 유발한 원인 제공자인 그 선배가 돌아오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한 하객은 오직 기적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노동자의 자식으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언어를 막 펼치려던 순간이었다. 청년의 열정에다 문학적 세기(細技)와 인문적 교양이 구색을 갖추어 가던 때였다. 임계점에 도달한 물이 일순간 끓어오르듯 시인의 길을 걸어가는 데 그에게 남은 관문은 더 이상 없었다. 만일 그가 그 한밤의 술자리에 없었더라면, 술을 사러 가게를 찾아 나서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런 피로연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는 지금쯤 우리 언어의 가장 예민한 곳간을 지키는 파수병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저 거무튀튀하고 메마른
     어머니도 없고 누이도 없는
     화성으로 가자
     가서 썩지도 않는 육신 갖다 버리고
     거기 쓸데없는 인연일랑
     아무렇게나 파묻어 버리자

 

     - 중략 -

 

     무슨 뜨거운 욕심 일깨워 세상을
     저렇게 밤마다 데우고 또 데우는지
     세상의 바깥에서 달이 뜨고 별이 진다
     저것들, 달과 별과 하늘까지 모두 갖다 버리자
     - 졸시, 「부음 - 조재경에게」 중에서

  

코마 상태에 빠진 그는 한동안 이 세상을 떠나지 못했다. 영민한 그의 영혼이 떠난다는 것을 육신은 쉽게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을 바라는 홀어머니와 동생과 선후배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는 비쩍 마른 쭈글쭈글한 육신만 남겨 놓고 영구히 떠나고 말았다. 그의 영혼이 도달한 곳엔 무엇이 있으며, 그가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나서 어떤 언어들과 어울리며 사는지 알 수 없는 게 한탄스럽다.

  

그가 떠났다는 연락을 받던 순간 나는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영혼을 앗아간 바로 그 문명의 이기를 몰고 외근을 하고 있었다. 뒤통수가 깨지는 듯한 굉음을 듣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장자리에 차를 대놓고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러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허겁지겁 그의 집으로 향했다. 영혼이 떠나 버린 그의 육신은 너무 하얬고 너무 말랐고 너무 가벼워 보였다. 나는 그의 육신을 통해 그 영혼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단박에 알았다.

  

그의 영혼에는 무엇보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순정하고 맑은 언어가 들어 있었다.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우리 서정시가 오래도록 보여 주고 있는 감정이입과 물아일체의 정서를 선호했다. 그러나 그는 선배 시인들의 단순 반복을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했고, 그 경계를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은 데 그의 생전의 고통이 있었다. 때문에 그가 현세에서 그런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의 영혼에는 순정하고 맑은 언어가 무겁게 채워졌을 것이다.

  

또한 그의 영혼에는 너와 나와 우리가 어찌 하면 다툼 없이 도란도란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탐색과 근심의 에너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열혈 청년이었던 그는 동서양과 좌우를 넘나드는 인문적 교양을 쌓으면서 때로는 대로에서 때로는 뒷골목 포장마차에서 이론과 실천을 병행했다. 전투경찰을 만나면 전투를 고갈비를 만나면 폭음(暴飮)을 했지만, 그가 최루탄과 막걸리를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그의 영혼에는 탐색과 근심의 에너지가 무겁게 채워졌을 것이다.

  

그는 이미 22년 전에 이 세상 일상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리하여 그가 생전에 추구했던 시업(詩業)은 이 땅의 모든 시인들에게 고루 나누어졌다. 그의 죽음을 아무리 슬퍼해도 그가 되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문득 그 불가항력이 너무 고통스럽다. ‘세상의 바깥에서 달이 뜨고 별이 진다.’

  

  

  

[입력 : 2019-05-15]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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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트리트저널 문화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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