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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대하여

“눈 밝은 이보다 귀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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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판을 본 사람은 안다. 도끼질 한 번마다 쩌렁쩌렁 울리는 나무의 비명 소리를. 전기톱과 나무의 맨살이 부딪힐 때마다 솟구치는 파열음을. 산판이 서면 골짜기는 거대한 울림통이 되어 아득한 선계(仙界)의 도인이 내지르는 포효인 양 신비하고 웅장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런 때 사람들은 산과 나무를 거대한 초록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심장을 울리는 소리로 느낀다. 영혼의 심연을 두드리는 저 소리는 한편 두려운 울림으로, 한편 신비한 정신의 고양(高揚)으로 발현된다.

  

깊은 산의 초록도 물이 한창 오르는 오뉴월에 이르면 윤기 나는 진초록이 되어 눈부신 청량감을 주지만, 아무래도 산은 소리로써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더 깊게 인식시킨다. 정지용 시인(1902-1950)의 「長壽山 1」 에 보이는 ‘멩아리 소리’는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베일 때 골을 울리며 쩌르렁 정정 돌아오는 소리다. 그래서 ‘벌목 정정’(伐木丁丁)이다. 소리는 또한 다람쥐도 좇지 않고 산새도 울지 않는 절대 고요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산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 정지용, 「長壽山 1」 전문

  

어떤 때 소리는 색보다 선명하다. 어떤 때 소리는 눈 밝은 이보다 귀 밝은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귀 밝은 사람은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을 다 지고도 ‘웃고’ 올라간 이유를 어림할 줄 알고, 귀 밝은 사람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 속에서 심히 흔들리우는 ‘시름’까지 느낄 줄 안다. 소리에는 고요와 포효의 두 극단만 있는 게 아니다. 귀 밝은 사람의 소리에는 시작(始作)이 있다. 시작이 있기 때문에 끝도 있다. 그래서 귀 밝은 사람은 소리로써 시간을 인식할 줄 안다.

  

정지용 시인이 “오오 견디랸다 차고 兀然(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라고 한 것은 '무한한' 정신의 겨울을 '무수한' 한밤 내 견딤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정신의 높이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귀 밝은 사람에게 시간은 소리로써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리는 한 세계를 모두 담은 거대한 그릇이 된다. 실로 소리는 이 세계의 곳곳에서, 지하에서 지상에서 허공에서, 표층에서 표층으로 심층에서 심층으로 펼쳐져 있다. 세계는 소리다.

  

     우글거리는 웅성거리는 뒤섞인
     출렁거리는 울렁거리는 심연에서
     규칙적인 불규칙적인 뒤틀린
     음들 음파들 의미를 향한 음표들

  

     광장에서 골목에서
     지하에서 지상에서 허공에서
     표층에서 표층으로 심층에서 심층으로
     상실에서 분노로 좌절에서 희망으로
     - 졸시, 「함성, 솟구치는」 중에서

  

우리는 보았다. 작은 소리들이 모여 큰 소리를 이루는 것을. 작은 소리에 담긴 뜻이 모여 거대한 의미를 이루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광장에서 골목에서 웅성거리는 울렁거리는 음들 음파들 의미를 향한 음표들을 보았다. 그런 점에서 소리는 단지 세계일뿐만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하다. 소리로 된 세계는 소리로써 운동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은 언제나 그렇듯 희망을 지향할 것이다.

  

그래서 시는 소리에 민감한 예술인지 모른다. 음악적 특성은 물론이고 비음악적인 소리까지 시적 언어의 예민한 감각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산판의 쩌렁쩌렁 울리는 거대한 소리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영혼에 '두려운 울림'이자 신비한 '정신의 고양'으로 나타난다. 정지용 시인은 심지어 ‘고요’ 속에서도 심히 흔들리우는 ‘시름’을 감각했다. 그런 점에서 소리는 시적 언어의 외연이자 내포이다. 물리적 소리는 영혼의 소리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눈 밝은 이보다 귀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 소리로써 이 세계를 더 넓고 깊게 이해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내가 들은 소리만이 아니라 듣지 못한 소리까지 들으면서 시를 통해 이 세계의 비의(秘義)를 전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입력 : 2019-05-02]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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