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 칼럼
  2. 김재홍의 길을 찾는 여행

경부고속도로와 김일성

“언제나 그렇듯 정권은 유한하고 국민은 유구하다”

글  김재홍 기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강원도 황지를 떠나 경상북도 석포를 거쳐 경상남도 울산에 도착하는 이동의 과정에서 열차는 내게 절대적인 해방의 시그널이 되었다. 그것은 나를 어디든 데려다 줄 수 있는 거대하고 정밀한 기계라서가 아니라 이미 영혼의 탈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3도를 거치는 이동의 궤적은 멀고 길었으며, 그런 만큼 열차는 시커먼 탄광촌 거리와 산판이 들어선 오지로부터 나를 광대한 푸른 바다로 나아가게 하는 진정한 자극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열차보다는 고속버스를 많이 탔다. 열차의 몸집과 소리와 냄새와 율동까지 선망하면서도 주로 고속버스를 타고 다녔다. 울산역에는 간선철도인 동해남부선(부산진-포항)을 제외하면 서울 청량리역으로 가는 중앙선만 다녔기 때문이다. 밤 10시경 열차를 타면 새벽 6시 무렵 도착하는 야간열차였다. 무려 여덟 시간이나 딱딱한 통일호 객실에서 불편한 밤을 견뎌야 하니 그 절반 정도면 터미널에 도착하는 고속버스를 타는 건 당연했다.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열차는 내게 해방과 탈출의 시그널이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와 고속버스는 그 시간만큼 나의 직접적 체험 공간 속에 자리한 채 구체적 물질성으로 울산과 서울을 연결하고 있다. 나의 ‘서울길’은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와 터널과 휴게소와 무지근한 고속버스의 진동이다. 일차적으로 나의 '서울’은 반포에 있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다. 열차가 내게 이상적 이미지라면 버스는 나의 현실적 교통수단인 것이다.

    

5.16은 물론이고 베트남전쟁과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박정희는 나의 직접체험 대상이 아니다. 1968년생인 내가 자의식을 가지고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된 청년기에는 이미 베트남전쟁은 종전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시해되었고, 호헌철폐와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의 열기가 전국에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경부고속도로는 아직 내게 낯선 곳이자 두려운 곳이었던 서울로 나를 데려다 주는 최단 코스일 뿐이었다. 아직 나의 서울은 멋있는 곳, 좋은 곳, 화려한 곳, 부러운 곳, 살고 싶은 곳이라는 추상(抽象)이었다.

    

그날은 아마 여름방학 중이었을 것이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고속버스의 에어컨마저 눅진한 바람을 내뿜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업은 엄두도 낼 수 없었기에 대학원으로 피신한 때였다. 할 수 있다면 졸업을 하지 않고 학교에 더 남아 시니 소설이니 후배들과 술타령이나 하는 것이 속 편한 상황이었다. 시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그날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어 울산으로 내려가던 그날 고속버스에서 김일성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내가 태어나기 20년 전부터 북한의 최고 권력자였고, 내가 스물일곱 살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에도 대원수님이었던 사람이다. 긴급 타전되는 그의 사망 소식은 목젖이 타오르는 불볕더위를 한 번에 날려 버렸다. 장기간 최고 권력자로 북한을 통치한 그의 사망 소식은 그날 터미널에 함께 있던 사람들과 같은 버스를 탄 사람들은 물론이요 온 국민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그의 사망 이후 북한 내부 상황과 주요 외국의 반응을 전하는 국제뉴스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 마디로 그날의 이미지는 놀라움과 시끌벅적이다.

    

그날 이후 내게는 이상한 습벽이 하나 생겼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반포의 서울고속터미널과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날이면 가끔씩 김일성의 사망 소식을 접했던 그날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날 그 왁자한 분위기 속에서 시민들이 놀라워하는 모습들, 북한 동정과 외신 반응을 전하는 특집 뉴스들, 군과 경찰의 비상경계 태세를 알리는 정보들, 무엇보다도 전쟁이라도 발발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얼치기 대학원 신입생에 대한 부끄러움 등등이다.

    

이제 경부고속도로는 울산과 서울을 잇는 구체적 체험 대상만 아니라 김일성의 사망과 그날의 시끌벅적하고 왁자한 이미지로 연결된다. 꼭 그럴 필요도 없고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지만, 정작 박정희 대통령은 떠오르지 않는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장기 독재를 일삼은 권력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업화와 수출 입국의 리더로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성과 가운데 경부고속도로는 경제 동맥(動脈)으로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말이다. 

    

마침 일이 있어 세종특별자치시로 가기 위해 서울고속터미널 경부선 플랫폼과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다시 그날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권력은 유한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기의 남북 최고 권력자는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정권은 유한하고 국민은 유구하다.

  

  

  

   

[입력 : 2019-04-19]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Copyright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댓글
스팸방지 [필수입력] 왼쪽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포토뉴스

Future Society & Special Section

  • 미래희망전략
  • 핫뉴스브리핑
  • 생명이 미래다
  • 정책정보뉴스
  • 지역이 희망이다
  • 미래환경전략
  • 클릭 한 컷
  • 경제산업전략
  • 한반도정세
뉴시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