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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이공’(窮而工)과 기룬 ‘어린 양’

“모든 좋은 시는 고귀하다”

글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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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1879-1944)은 시집 『님의 침묵』에서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님’만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라고 했다. (「군말」). 한용운에게 님은 ‘어린 양’이었던 셈이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양의 이미지가 은유적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느냐와 별개로 여기서 ‘어린 양’은 나라를 빼앗긴 채 고통을 겪고 있는 연약한 민초를 표상한다. 신약성경 ‘되찾은 양의 비유’(마태 18,12-14)에 등장하는 양과 마찬가지로 만해에게도 ‘어린 양’은 님이자 기룬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립다의 전라도 방언으로 검색되는 ‘기룹다’는 그리움, 애틋함, 애처로움 등의 어의를 두루 갖춘 말로 선사(禪師)인 그가 왜 불립문자(不立文字)가 아니라 언어로써 ‘님의 침묵’을 표현해야 했는지 적실하게 말해 준다.

    

만해는 또 「독자에게」에서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합니다."라고 했다. 그것은 독자가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한용운은 기룬 어린 양을 위해 시를 적었으나 독자와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힘으로써 ‘슬픔’이 전수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그렇게 읽히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늦인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이는 것’과 같을 것이라며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진다."고 적었다(1925. 8. 29).

    

완당 김정희(1786-1856)는 평생의 벗 권돈인(1783-1859)의 「동남이시」(東南二詩)를 평하며 이런 논평을 남겼다.

    

“구양수가 시를 논하여 이르기를 ‘곤궁해야 좋아진다(窮而工).’고 하였는데, 이는 단지 빈천한 사람의 곤궁함을 말한 것이다. 부귀하지만 곤궁하게 된 사람의 곤궁함이라야 곧 곤궁함이라 할 수 있으며, ‘곤궁해야 좋아진다.’는 것도 또한 빈천한 사람이 곤궁하여 좋아진 것과 다름이 있다. … 부귀하여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이 다시 곤궁하게 된 뒤에 더욱 좋아지는 것은 결코 빈천한 사람이 곤궁하게 되었다고 해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題彛齋東南二詩後)

    

이재 권돈인은 5대조가 우의정을 지냈고, 부친도 군수를 역임하는 등 조선 후기 안동 권문의 고귀한 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1845년 영의정에 올랐으며, 1849년에는 원상(院相)으로서 국정을 처리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빈천한 사람과 곤궁한 사람은 같지 않으며, 진짜 좋은 작품은 ‘부귀하지만 곤궁해진 사람’인 권돈인과 같은 사람의 시다. 완당은 영의정까지 지낸 친구가 말년에 유배를 가게 되자 구양수(1007-1072)의 ‘궁이공’ 시론을 변용해 그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완당 역시 그의 증조부가 영조대왕의 부마(화순옹주의 남편)였으며, 아버지도 병조판서를 역임한 집안의 자손이다. 자신도 대과에 급제하여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까지 역임했다. 그의 집안은 조선조 전체를 두고도 훈척 가문(勳戚家門)의 하나인 경주 김 문이었다. 그러던 그가 9년 동안이나 제주도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다시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2년 동안 북청에 유배되고 했으니, 고귀한 가문의 부귀한 자가 곤궁한 시세를 만난 데 대해 크게 공감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논평은 동병상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양수의 궁이공(窮而工) 시론은 ‘곤궁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간단한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형식을 버리고 실질을 중시하자고 하는 송(宋) 대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4·6체의 판에 박힌 문체를 바꾸는 것은 그 시대의 언어 질서를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 시대의 언어 질서를 바꾼다는 것은 사유와 가치 체계를 새로 정립하는 일이다. 때문에 구양수의 궁이공은 관용화된 여리고 윤기 넘치는 문장을 버리고 밑바닥까지 실체를 표현하는 문장으로서의 ‘곤궁’(窮)을 의미하는 것이다.

    

권돈인의 시에 대한 완당의 언급은 단순한 덕담으로 그치지 않는다. 부귀하다고 하여 고귀한 것도 아니고, 빈천하다고 하여 곤궁한 것도 아니다. 부귀해도 곤궁할 수 있으며, 고귀하지만 빈천할 수 있다. 또한 비천하다는 것과 고귀하다는 것은 시간을 두고 보면 언제든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비천하다가 고귀해질 수도 있고 고귀하다가 비천해질 수도 있다. 추상이 아니라 실상을, 이념이 아니라 실질을 높이 세운다면 얼마든지 궁이공의 시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시인으로서 여러분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만해의 뜻과 반대로 우리는 여전히 그의 시를 통해 위안을 얻고 있으며, ‘침묵의 언어’가 기룬 ‘어린 양’을 보듬어 한 생을 이어 다음 생을 마련하는 것을 본다. 또한 우리는 김정희와 권돈인의 부침을 통해 참다운 시는 언제나 실상과 실질을 높일 때 이룩될 수 있다는 상식을 확인하고 있다. 좋은 시는 결코 높고 부귀한 데 있지 않고, 낮고 곤궁한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좋은 시는 고귀한 것이다.

  

  

  

[입력 : 2019-04-17]   김재홍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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