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 칼럼
  2. 김재홍의 길을 찾는 여행

봄눈 오던 곳에 내리는 봄비

"봄은 봄이어도 늘 같은 봄은 아니다"

글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닷새 전 이곳 예버덩에는 봄눈이 내렸다. 그것도 많이 내렸다. 그때 나는 저녁 6시 현재 작업실 창밖은 어둠 때문이 아니라 휘날리는 눈발로 앞을 분별하기 어렵다."고 기록했다. 지금 그곳 그 자리에 비가 온다. 꽤 많이 온다. 눈과 비 사이의 간격으로 닷새는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비는 겨울과 봄 사이를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드는 두꺼운 경계선인지 모른다. 이 비는 봄을 부르는 비, 진짜 봄비다.

     

가을에서 겨울로 갈 때에도 비가 온다. 가을비는 겨울을 맞는 사람들에게 찬바람과 추위의 기억을 떠올리며 혹한의 계절을 견디는 자세를 가다듬게 한다. 마찬가지로 봄비는, 이제 꽃피는 계절이며 신록과 함께 자연의 순한 살결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은 꼭 봄비 맞으며 돌아’(이은하) 올 것 같고, ‘나를 울려주는 봄비’(박인수)라도 처연하지만 겨울을 이겨낸 어떤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런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계절은 그리 확연하게 태변하지는 않는 법이다. 자본의 대물림만큼 가난도 대물림되며, 희망의 대물림만큼 고통도 대물림되는 게 현실이다. 혹한의 겨울이 고통의 표상만은 아니듯 초록의 새봄이 오직 행복감만 주는 것도 아닌 게 이 세상의 실제다. 자연의 운행을 인간사에 비유하는 일이야 수천 년 내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타포일 뿐이란 게 경험칙이다.

     

신문과 방송은 계절에 상관없이 섬뜩한 사건사고를 연일 보도하며, 눈과 바람과 비와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우성은 이 세상의 엄혹한 현실을 새삼 확인케 한다. 모여서 살 수밖에 없는 터무니없이 부실한 인간 공동체 내부에 항상적으로 존재하는 불일치와 불평등은 어떤 면에서는 자연의 규칙성에 버금가는 인간사의 법칙성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겨울보다는 봄을 선호한다. 인간의 시각 능력에 부합하는 봄의 색채감은 물론이고 꽃들과 연초록 풀잎들이 자극하는 후각 정보는 사람들을 올연(兀然)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단지 심리적 효과일 뿐일지언정 우리는 겨울보다 봄에 더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그리하여 여전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를 이어 하루를 사는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봄은 봄이어도 늘 같은 봄은 아니다(春來不似春).

     

예버덩문학의집이 위치한 횡성군 강림면 일대는 응달마다 여전히 계곡의 어금니처럼 얼음이 남아 있었다. 닷새 전에 내린 눈은 이곳 얼음의 실재에 대한 강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구석진 곳에 웅크린 새하얀 어금니는 먼저 이곳이 강원도임을 표상하고, 또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깨끗한 순수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내리는 비로 하여 그런 상징적 기능은 진초록 숲과 주천강 연둣빛 물줄기가 대신하게 될 것이다.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장수산(長壽山) 1). 정지용 시인(1902-1950)은 이로써 겨울을 견디어 봄을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시름겨운 세상사를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웅숭깊은 의지의 시어를 남겼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입력 : 2019-03-20]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more article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Copyright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댓글
스팸방지 [필수입력] 왼쪽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포토뉴스

Future Society & Special Section

  • 미래희망전략
  • 핫뉴스브리핑
  • 생명이 미래다
  • 정책정보뉴스
  • 지역이 희망이다
  • 미래환경전략
  • 클릭 한 컷
  • 경제산업전략
  • 한반도정세
뉴시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