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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개(月峴) 넘으면…

"언제나 또 다른 달고개가"

글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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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언제나 '또 다른 균형'이다. 불균형은 없다. 오직 균형과 또 다른 균형만 있을 뿐이다. 깨진 균형이 불균형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또 다른 균형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난생 처음 가는 어떤 낯선 길에서 아주 가끔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균형과 또 다른 균형 사이의 길항이다.

      

가령 예버덩에서 달고개(月峴)로 가는 길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우선 도로를 따라 강이나 개울이 흐를 것이다. 차로는 직선보다 곡선이 많을 것이다. 영서지방이지만 강원도는 강원도니 높낮이도 제법 클 것이다. 강을 따라 흘러가는 차로는 양옆에서 따라오는 높고 급한 산세 때문에 한편으로 고즈넉하고 한편으로 스산한 기분이 들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논보다는 밭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달고개로 가는 길은 이럴 때 균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걷는 사람의 심리도 안정될 것이고, 체력적 안배도 적절히 이루어질 것이다. 이럴 때 시적 흥취도 생길 수 있고 호방한 기운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균형이란 하나의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초행길이라도 출발 전에 예상했던 대로 펼쳐진다면 걷는 이의 균형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예버덩에서 달고개로 가려면 먼저 폭 좁은 다리 하나를 건너면 된다. 거기서부터 왕복 2차로의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안흥에서 강림을 거쳐 달고개로 이어지는 한적한 시골길이다. 도로 옆으로 주천강이 흐르고 있는 것은 벌써 확인한 터였고, 선형이 좌우로 굽어졌다 펼쳐졌다 할 것이라는 점 또한 예상한 바였다. 그러나 경칩을 지난 3월 초순까지도 강폭의 거의 절반 가까이 두꺼운 얼음판이 놓여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산세는 예상보다 훨씬 험준했고, 그런 만큼 도로는 깊이의 힘과 높이의 위력을 번갈아 경험하게 했다. 출발한 지 10여분 지나자 몸에는 금세 땀이 흘렀다. 예상대로 논보다 밭이 많았던 것은 물론이지만, 노면보다 훨씬 높은 산중턱도 밭으로 개간돼 있었다. 또 소규모 수력 발전소가 두 곳이나 있어 의아했다. 발전에 필요한 충분한 위치에너지를 얻기에는 수량도 표고차도 넉넉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 균형은 깨어지지 않는다. 걷기와 산행으로 다져진 체력과 정신력은 걷기 1시간을 넘길 때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잘 지어진 펜션과 전원주택 사이로 자꾸만 빈집들이 나타났다. 길은 외길, 자동차는 가끔씩 지나갔지만 2시간 가까이 마주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도로는 이제 오르막만 있었다. 경사는 더 급해졌다. 예상보다 훨씬 고즈넉하고 스산했다.

      

먼저 심리적 균형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발바닥이 아리는 등 체력적으로도 위험 신호가 오고 있었다. 얼마나 걸어야 달고개((月峴) 종점이 나오는지 알 수도 없었다. 해가 저물면서 기온도 급격히 떨어졌다. 급해지는 산세와 가파른 선형만큼 균형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만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자꾸만 생각했다. 풍경을 음미하는 여유도 깨끗한 산속에서 마음껏 운동한다는 자긍심도 사라졌다. 예버덩으로 어떻게 돌아가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 걱정에다 경사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커다란 초록색 이정표가 나타났다. 왼쪽으로 가면 횡성과 안흥이고, 직진하면 영월과 무릉도원이라는. 무릉도원이라니직감적으로 여기가 달고개 종점임을 알았다. 지형지세가 이미 횡성과 영월을 구분하는 곳임을 느끼게 했다. 그만큼 이곳은 고개였다.

      

그 직전까지 불안감과 피로와 한기로 요동치던 내 영혼도 그 이정표를 만나자마자 고요와 평온을 되찾았다. 세차게 불어오는 고지대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무릉도원의 실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이 고장의 경계를 보았으니 힘을 내어 예버덩으로 다시 돌아가면 되었다.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언제나 또 다른 균형이다. 횡성과 영월 사이, 달고개 넘으면 언제나 또 다른 달고개다.

  

  

  

 

 

 

 

 

[입력 : 2019-03-08]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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