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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성당 가는 길

"초봄 주천강 한기 속에서 그렇게 자동차를 갈망해 본 적은 없었다"

글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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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세 번밖에 다니지 않는다는 버스를 기다리기보다 그래도 열 번은 다닌다는 강림 삼거리로 가야 했다. 3km는 땀 좀 흘릴 각오라면 20분이면 되었다. 거기서 다시 안흥면까지 7km 남짓 더 가야 하는 데다 배차 간격을 알 수 없는 시골버스임을 감안해 1시간 이상 말미를 두고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리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교중미사는 오전 10시에 시작이니 예버덩에서는 840분 내외에 출발하는 게 옳아 보였다.

      

아직 컴컴한 새벽에 일어났지만 왠지 마음이 급해 서둘러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 황급히 옷을 챙겨 입었다. 묵주는 팔목에 차고 김수환 추기경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는 주머니에 넣고 둑길로 접어들었다. 강변 산책로는 벌써 군데군데 녹아들고 있었다. 20도 가까운 일교차는 흙길을 얼렸다 녹였다 마음껏 주무르면서 아주 탄력 좋은 양탄자로 만들고 있었다.

      

성당으로 가는 길은 좀 경건해도 좋았겠다. 하지만 조금씩 질척거리기 시작한 황톳길을 빠르게 걸어가는 마음에는 미사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조급성만 가득 찼다. 가늠할 수 없는 이동 시간과 이미 정해진 미사 시간은 너무 확고한 존재론적 차이였다. 길이 불편해지기 전에 서둘러 가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그러니 아직 덜 풀린 주천강 곳곳의 얼음들과 그 사이를 잽싸게 흘러가는 물소리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이곳 둑길은 홍수를 걱정해 인공으로 조성한 게 아니었다. 일정한 높이로 조성돼 수면과 격리된 둑이 아니라 높은 데는 높게 낮은 데는 낮아서 물과 거의 닿을 듯한 곳도 있었다. 오르막이 길지 않으니 내리막도 길지 않았다. 높낮이도 다채롭지 않았지만 길은 곡선보다 직선에 가까웠다. 시간의 성질만 다르지 않았다면, 또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산보였다면 아마 이 부드러운 강변 흙길을 더 사랑하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정말 겨드랑이에 땀이 날 즈음 강림 삼거리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910. 이제 버스만 오면 되었다. 시속 60km 속도라면 7km 거리는 아무리 버스라도 15분이면 될 것 같았다. 버스만 와 준다면 말이다. 하지만 30분 동안 버스는 단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마주친 사람도 딱 한 명. 귀한마을 어른께서도 최근 7년 동안 한 번도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간은 이미 940, 버스에 앉아 있더라도 겨우 미사 시간을 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순간 암튼 환경오염이고 뭐고 자동차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 또 오늘 우리 한국인들은 서로 아주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 10km를 이동해 성당으로 가는데 왕복 4시간을 걸어야 하는 한국인과 20여 분이면 충분한 한국인이 동시에 살고 있다.

      

걷는 시간으로 사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는 시간으로 사는 사람과 자동차를 모는 시간으로 사는 사람과 비행기를 날리는 시간으로 사는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동시대인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허용된 일상의 공간도 동일하지 않다. 시공간의 물리적 조건이 다르므로 마음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무수히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살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강변하는 게 국가의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야 원래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이며 또 그래야 그나마 국채든 뭐든 유지할 수 있으니 이 자리에서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든 나는 주일 교중미사를 놓치고 말았다. 고해성사를 바쳐야만 한다. 서울 살이를 고통으로 느끼며 빠른 시간보다 느린 시간을 갈망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다 헛것이었다. 초봄 주천강 한기 속에서 서성거리는 순간만큼 절박하게 자동차를 갈망해 본 적은 없었다.

  

  

  

 

 

[입력 : 2019-03-04]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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