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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을 기다리자

글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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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참신한 발상과 큰 성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낯선 곳에서의 작업이 그저 마음 깊이 침전된 묵은 관성의 찌꺼기를 뒤흔들어 주기를, 상하좌우를 뒤틀고 낡은 기억과 오지 않은 미래를 뒤섞어 일대 혼돈의 풍파를 일으켜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혼탁한 정신의 대기(大氣)가 미구에 닥칠 우발적 탄생의 순간을 예비해 주기를, 오직 그러한 순정한 창조의 순간만 허락해 주기를.

       

떠들썩한 올해 삼일절 100주년 당일에 고즈넉한 강원도의 한 시골로 향하는 마음은 시인으로서는 솔직한 자기 토로에 가까웠다. 절대주의자인 듯 혹은 유미주의자인 듯 시를 갈망하는 마음은 시에 이르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결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에게 삼일절의 민족사적 의미와 국제정치적 맥락은 언제나 부차적이다. 아니다, 자신을 온전히 시에 바쳐 시로써 민족언어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민족사적이지 않은가.

      

정부와 관계 기관마다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한 삼일절 100주년은 무엇보다 광화문 일대의 교통 차단과 함께 왔다. 또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대부분 도로의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나타났다. 기념 행사장의 교통 차단과 황금연휴를 즐기려는 초봄의 교통체증은 서로 모순되면서도 공존했다. 이런 것도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의 공존인가.

      

강원 횡성군 예버덩문학의집은 아늑했다. 주천강의 느리고 완만한 물길에는 만곡의 여유가 있었다. 아직 갈색이었지만 산의 높이와 물의 깊이는 풍경에 심도를 더해 주었고, 물을 따르는 땅의 곡선과 산세의 다채로운 기울기는 완연한 입체감을 주고 있었다. 이곳에 집을 지어 문인들을 불러 그들이 장차 자신의 작품에 자기 영혼을 오롯이 바칠 수 있도록 돕고자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경관이었다.

      

    

 

‘예버덩’은 ‘문학의 집’이라기보다 ‘문학을 기다리는 집’에 가깝겠다. 사실 모든 문학의 집은 ‘문학을 기다리는 집’이며 또한 그러해야 한다. 사진은 필자의 방이다. 이제 시신(詩神)을 영접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른다. 영접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신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나의 시신(詩神)을 영접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른다. 영접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신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언제나 그렇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오직 바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예버덩문학의 집이라기보다 문학을 기다리는 집에 가깝겠다. 사실 모든 문학의 집은 문학을 기다리는 집이며 또한 그러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시신(詩神)은 오고 있는가. 가령 바흐(J. S. Bach, 1685-1750)<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Jesu Joy Of Man's Desiring)200여 곡이 넘는 그의 칸타타의 행렬에 속한 단 한 명의 초병이지만, 오보와 트럼펫과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딛고 선 저 간절한 접신(接神)의 선율은 내 영혼에 신의 자리를 서둘러 마련케 하는 것 같다. 신을 기다리자. 간절히.

  

  

 

 

 

[입력 : 2019-03-02]   김재홍 문화부장 겸 문화사업본부장, 시인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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