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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들어 저 산의 달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 생각하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타향도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글  서정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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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한가위,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노래 몇 곡과 한시 한수를 글에 실어 보냅니다.
 
首丘初心(수구초심), 여우도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하고 죽는다고 하나요. 결국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겠죠.             
              
예기(禮記) 단궁상편(檀弓上篇)에 나오는 이 말은 은나라 말기 강태공 여상(呂尙)이 영구(營丘)라는 곳에 봉토를 받았지만 죽을 때는 그를 포함하여 5대손에 이르기까지 다 천자의 땅인 주나라 땅에 장사지내진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죠.                  
                     
고지인유언 왈 호사정구수인야(古之人有言 曰 狐死正丘首仁也), 옛 사람이 말하기를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향하는 것은 '인(仁)'이라고 하였다. 공자는 사회혼란의 원인을 '도덕적 해이'로 보고 인간이 회복해야할 근본정신을 '인(仁)'이라고 했는데 결국 수구초심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으로 봐야겠죠. 
   
오늘은 민족의 으뜸 명절 추석을 맞아 고향에 대한 노래 몇 곡 들어볼까요. 먼저 동요부터 보시죠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애국가보다 많이 불린다는 '고향의 봄'이죠.            
            
이 노래는 이원수가 14세 때 지은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인데 작가의 말을 직접 들어볼까요. 
  
"내가 난 곳은 양산이라고 했다. 양산서 나긴 했지만 1년도 못되어 창원으로 왔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난 곳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마산에 비해서는 작고 초라한 창원의 성문 밖 개울이며 서당 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 그런 것들이 그립고 거기서 놀던 때가 한없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 그래서 쓴 동요가 '고향의 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방랑'에 대한 동경과 '고향'에 대한 동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게오르크 짐멜), 오늘 하루라도 동심으로 돌아가 고향의 정취를 느껴보시길...                
                
동요를 들어 봤으니 이제 약간(?) 올드한 노래를 들어 볼까요.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서 갈 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1972년 임종수가 황등에서 익산까지 통학하며 느꼈던 학창시절과 고향 순창에 대한 향수,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황등역 주변에 만발했던 코스모스를 주제로 작사·작곡한 '고향역'인데,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가 '녹슬은 기찻길'과 함께 전국을 철도로 뒤덮어 버린 불후의 명곡이죠.        
        
안 그래도 설레는 고향길에 이뿐이 곱분이까지 달려 나와 반겨주니 얼마나 설렐지...
이왕 시작한 것, 좀 더 올드한 곡 한 곡 더 들어볼까요.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고향을 떠나 온 지 몇몇 해던가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잊어                   
 
                   
박두환 작사, 김기태 작곡, 한정무가 노래한 '꿈에 본 내 고향', 이 곡은 가요무대에서 2013년 말 기준 104회로 최다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곡이죠.
  
‘조국보위의 노래’, ‘전호속의 나의 노래’, ‘해안포병의 노래’, ‘결전의 길로’ 등 아직도 6.25 관련 북한 노래는 ‘원쑤’, ‘총탄’, ‘섬멸’ 등 직설적이고 거친 언어들로 가득한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외에 다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는 현실이 참으로 가슴 아프네요. 
  
화해와 통일의 시대를 맞아 이에 걸맞는 노래를 같이 만드는 일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지...
   
이번에는 제가 아는 노래 중 가장 올드한 노래 한 곡만 더 들어볼까요.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련만                   
호들기를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고향                   
    
                   
1934년에 발표된 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가 노래한 '타향살이'죠. 고복수 선생은 '타향살이' '황성옛터' 등의 주옥같은 노래로 일제시대 민족 망향의 한을 달래주어 '알뜰한 당신' 등을 부른 부인 황금심 여사와 함께 국민가수로 추앙된 분이죠.              
                
특히 이 노래는 1940년 그가 하얼빈에서 공연할 때 객석이 눈물바다를 이루고, 공연 도중 한 30대 여인이 즉석에서 유서를 쓰고 자살한 일화로 유명한데 기록을 찾아보니 그 후 북간도 용정에서도 공연 도중 한 여인이 음독자살했다고 하네요.
  
 
풍요로운 한가위,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노래 몇 곡과 한시 한수를 글에 실어 보냅니다. 사진=뉴시스DB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노래를 몇곡 들어봤으니 한시도 한수 감상해 볼까요.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26세 때 양주객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靜夜思(정야사)'라는 시죠.
 
 
牀前看月光(상전간월광)
침상 앞 은은한 달빛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땅에 내린 서리인듯 하네
 
擧頭望月山(거두망월산)
머리 들어 저 산의 달 바라보다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두보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1500여 편이나 되는 뛰어난 시를 남겼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의외로 많지 않아 서역인인지 한족인지도 논란이 있는 이백,
 
쓰촨(四川) 장요우(江油), 후베이(湖北) 안루(安?), 간쑤(甘?) 톈수이(天水), 키르기즈스탄의 토크목(Tokmok)시 등 그의 고향을 두고 지금도 끊임없이 분쟁에 휩싸여 있는 이백,
 
'한 말 술을 마시면 곧 백 편의 시'를 짓는 격렬하고 낙천적인 성품으로, 인생과 자연의 불가사의를 즐겁게 노래한 도가적 경향의 이백,
 
그는 10세에 시를 지을 만큼 글재주가 뛰어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25세에는 백성을 구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죠.
 
그러던 중 742년 43세의 나이에 현종의 부름을 받아 궁정 시인을 지냈는데, 이때 그는 '청평조사(淸平調詞)'를 지어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면서 현종의 사랑을 받았죠.
 
그러나 그는 굽힐 줄 모르는 성격을 지녔고, 술과 글만 즐겼던 까닭에 결국 평생을 이곳저곳 떠돌며 시를 짓죠.
 
그후 이백은 두보를 만나서 서로 시를 지으며 친분 관계를 맺었고, 56세에는 안녹산의 난을 막고자 군에 뛰어들기도 했죠.
 
수년 후 그는 강에서 뱃놀이를 하던 중 물 위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뛰어들어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시에서는 언제나 술(酒)이 떠나질 않죠.
 
그는 시를 지으며 술을 마시면 항상 삼백 잔을 마셨다고 하는데, 지나친 술은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 '이백'도 그의 이름처럼 '이백' 잔만 마셨으면 좀 더 오래 살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그래도 당시로선 엄청난 장수인 60이 넘게 살았으니 술과 생명은 큰 관계가 없는 것인지...
 
이 부족한 글은 망운지정(望雲之情)에도 여러 피치 못할 사정상 고향을 가지 못하는 분들께 바치며 그 분들의 가슴속에도 고향이 부르는 그리운 노래가 울려 퍼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입력 : 2019-09-12]   서정욱 변호사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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