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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미국 결혼 풍속...친구들까지 참석하는 결혼식 예행연습

미국인 조카 결혼식 참석 후기...현금 부조 선호

글  이상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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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미국에 사는 '미국인' 조카가 결혼했다. 당시 필자는 그해 추석 연휴 기간에 미국에 직접 다녀왔다.

 

필자의 누나는 1980년대 중반 미국인과 결혼해 현재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 살고 있다. 딸과 아들을 연년생으로 두었는데, 그 가운데 맏이인 딸이 그해 10월 1일 결혼하였다.

 

미국의 결혼식 장면은 TV나 영화 등으로 간간이 보아왔지만, 결혼식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우리의 결혼식 문화도 대부분이 서양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미국의 결혼식을 보니 우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느껴졌다.

 
부케 대신 자동차 키를 들고 행진연습을 하며 웃고 있는 예비 신혼부부(신부 에이미와 신랑 앤드류).

우선 우리의 결혼과 가장 다르게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결혼식 예행연습(리허설: rehearsal)을 한다는 것이었다. 리허설은 결혼식 하루 전날인 토요일 오후 2시에 실제 결혼식 예정 장소에서 진행됐다. 하객만 없는 상태에서 신랑과 신부, 들러리, 신랑·신부 부모님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갑작스런 기온 하락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신랑·신부의 친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날 하루를 친구를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랑의 들러리는 그룸스맨(Groomsmen), 신부의 들러리는 브라이드메이드(Bridesmaids)라고 하는데, 실제 결혼식이 열리는 날까지 치면 이들은 이틀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친구의 결혼식에 투자하는 셈이다.
 
결혼식 예행연습을 마친 신랑신부 친구들과 가족들이 인근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이것을 '리허설 디너'라고 한다. 신세대 목사가 기도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2시간 정도 이어진 리허설에서는 결혼식 순서와 동선(動線)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리허설을 마친 일행들은 부근의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리허설에 참석한 들러리들의 식사 대접을 ‘리허설 디너’라고 하며, 대게 신랑 측 어머니가 이날의 밥값을 부담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결혼식은 10월 1일 일요일 오후 4시에 열렸다. 신부인 조카딸은 결혼 전날을 브라이드메이드들과 호텔에서 보낸 후 아침 7시 반에 어머니(필자의 누나)에게 전화해서 호텔로 오라고 했다. 어머니도 같이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조카딸은 밤새 친구들과 호텔방에서 노느라 한숨도 못 잤다고 하소연했다. 화장은 메이크업 전문가가 직접 호텔을 방문해 진행한다. 신부뿐 아니라, 들러리, 신부 어머니까지 모두 화장을 마치면 드레스를 갈아입고 결혼식장으로 이동한다.
 
본격적인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예비 신랑·신부와 들러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부와 들러리들의 기념촬영.

신랑 측 들러리들은 신랑과 같은 색의 양복을 맞춰 입고, 신부 들러리 경우 신부가 입는 흰색을 제외한 색으로 드레스를 맞춰 입는다. 옷값은 들러리로 뽑힌 이들이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기꺼이 옷값(약 500달러)을 부담한다고 한다. 신랑과 신부의 가장 친한 친구 한명씩을 대표 들러리로 세우는데 이를 ‘베스트맨’(Best man)과 ‘메이드 오브 아너’(Maid of Honor)라고 부른다. 이들은 신랑 신부를 도와 결혼식 과정의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신랑·신부가 식장으로 출발하면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주며, 결혼 반지를 건네는 등 결혼식 내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본격적인 식이 열리기 전에 이루어지는 기념촬영
 
결혼식장은 시내 외곽 허허벌판에 있었다.

결혼식장은 콜럼버스시 북동쪽 외곽의 ‘허허벌판’에 있었다. 결혼을 포함 각종 모임을 개최하기 위해 지어진 시설로, 메인 홀과 식사, 기타 각종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진입로는 비포장에 먼지가 심하게 일어 결혼식 당일에는 물을 뿌려 놓았다.
 
필자의 누나는 “이 결혼 전문 시설을 빌리는 데 음식과 술값을 제외하고 순수 시설 대여료만 7200달러가 소요되었다"며 “그나마 일요일에 빌리는 것이 좀 더 싸고, 토요일의 경우는 9500달러 이상"이라고 말했다. 예식장과 드레스, 술과 음식, 케이크, 꽃값  등을 포함해 조카딸의 결혼식에는 총 3만 달러 정도 소요되었다고 한다.
  
결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미국인들은 교회나 가정집 마당(뜰)에서 피크닉 식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선호한다. 시에서 운영하는 좀 더 값이 저렴한 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예약이 1년 전부터 꽉 차서 순서를 잡기가 어렵다고 했다. 필자의 누나의 경우 결혼식을 남편 집 뜰에서 올렸는데, 햇볕을 가릴 대형 텐트를 빌리는 데 든 돈을 제외하면 예식장 비용은 따로 들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미리 도착한 하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간단한 음료를 마시면서 식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식장에 30분 전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손님들은 서로 인사를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포도주나 맥주, 쿠키, 과일 등을 먹고 마시면서 담소를 즐겼다. 미국 결혼식의 특징은 결혼식에 참여하는 사들이 모두 신랑·신부의 친한 친구들로 초청을 받아 온다는 것. 신랑·신부 부모들이 자신의 지인들을 초청할 때는 미리 자녀와 사전에 상의한 후, 평소 자녀와 친분이 있는 사람 위주로 초청한다고 한다.
 
메인 홀에 마련된 임시 바. 바텐더가 손님들에게 음료와 주류 서빙을 하고 있다.  
 
임시로 마련된 바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하객들.
 
결혼 전 1시간 가까운 기념촬영이 이어지는 동안 대기하고 있는 하객들이 음료와 주류, 쿠키 등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국 결혼식에서도 역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철학이 통하는 지 사진 찍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본격적인 식이 진행되기 전 신랑 신부와 들러리들이 거의 1시간 가까이 별도의 시간을 할애해 미리 기념 촬영을 한다는 것이었다.
 
기념 촬영이 이어지는 동안 하객들은 와인이나, 맥주, 쿠키, 케이크 등의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며 식이 진행되기를 기다렸다. 촬영이 진행된 메인 홀에는 간이 바와 뷔페식 음식 코너가 마련돼 있었고, 바텐더가 하객들이 원하는 주류나 음료를 건네주었다. 예식장에서도 바텐더에게 팁을 주는 손님이 많았다.
 
4시가 되면서 본격적인 예식이 시작되었다. 들러리들이 입장 한 후 신부가 가장 나중에 입장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부조금 문화
 
오후 4시가 되자 본격적인 결혼식이 시작됐다. 하객들은 야외 잔디밭에 마련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신랑·신부의 입장을 기다렸다. 먼저 신랑·신부의 가족이 입장했고, 이어서 남녀 들러리들이 짝을 지어 입장하면서 식이 시작됐다. 식은 신랑의 친구인 목사의 주례로 진행됐다. 주례사를 마친 후에 반지 교환과 결혼선서를 하고, 부부가 된 신랑·신부가 하객들 사이를 행진하는 것으로 예식의 주요행사가 끝이 났다.
 
결혼식 이모저모.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가 퇴장하면서 주요 행사는 끝나고, 저녁 식사와 피로연 파티가 이어진다.

이후에는 우리나라처럼 사진촬영이 이어졌다. 주례를 선 목사와 들러리들이 신랑·신부와 가장먼저 사진을 찍고, 양가 가족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결혼식에서 전문 사진사를 고용할 경우 평균 3000~3500달러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결혼식 축의금(부조)은 예전에는 선물을 많이 했지만, 요즘에는 현금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한다.
  
예식장 메인홀에는 선물을 놓는 테이블이 따로 마련돼 있었고, 가운데 유리 항아리에는 편지와 함께 돈이 든 봉투가 가득했다. 조카딸은 이 부조금을 결혼식 2주 뒤에 있을 신혼여행 비용으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혼여행지는 미국 서부 그랜드캐년으로 정했다고 한다.
 
결혼식장 메인홀 한켠에 마련된 결혼식 선물. 필요한 물건은 이미 한달 반 전에 친구들이 선물을 하기 때문에 실제 결혼식장에는 선물이 많지 않다. 식장에서는 주로 현금 부조를 많이 했다.

친구들의 경우 결혼식 부조금 금액은 50~100달러가 일반적이라고 하며, 선물은 신랑·신부가 필요한 물건을 미리 친구들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결혼식이 열리기 한달 반 전쯤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라고 해서 신부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파티)를 여는 경우가 많은데, 이 파티 초청장에 물건의 목록과 이 물건을 구입할 가게(마트)의 인터넷 사이트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선물의 중복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금액이 큰 선물의 경우 여러 명이 합쳐서 살 수도 있다.
 
예식의 마지막 행사로 가족 촬영이 이어지는 사이 일반 하객들이 피로연 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손님들은 자신의 이름이 든 작고 귀여운 꽃병을 들고와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 안내를 담당하는 친구(usher)가 따로 있다. 이날 조카딸 결혼식에는 약 160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피로연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들러리들이 입장하고 있다. 저마다 장난기 가득한 춤동작을 선보이며 입장했다.

결혼식 후 피로연 저녁 식사 모습.
 
음식은 메인홀에 마련되어 있고, 이곳에서 먹을 만큼 덜어와 피로연 자리에 앉아서 먹는다.
     
피로연 테이블에 앉기 위해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작은 꽃병을 고르는 하객의 모습.

어느덧 저녁 6시가 되어 어둑어둑 해가 기울기 시작했고, 하객들은 뷔페식으로 된 음식을 가져와 자리를 잡았다.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사이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남녀 들러리들이 짝을 맞추어 입장했다. 이때 들러리들은 저마다 장난기 가득한 춤을 추면서 등장해 웃음을 선사했다.
 
피로연 자리에서는 친구들의 축하와 신혼 부부가 서로에 대한 맹세를 다짐하는 편지낭독이 이어졌다.

피로연 메인 테이블 가운데에는 이날의 주인공인 신혼 부부가 앉고, 그 양쪽으로 신랑·신부 들러리들이 나누어 앉았다. 메인 테이블 앞쪽에는 들러리 대표 가족들이 자리를 잡았고, 양가 가족들은 하객들 테이블 중 맨 앞 자리에 위치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들러리 대표인 ‘베스트맨’과 ‘메이드 오브 아너’가 각각 신랑 신부에게 바치는 편지를 읽었다. 감동과 웃음, 눈물이 섞인 편지 낭독에 이어 신랑·신부가 각자의 배필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가족에 대한 감사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맹세했다.
 
밤 11시까지 이어진 흥겨운 노래와 춤
 
저녁 식사 후 신혼 부부의 춤을 시작으로 저녁 파티가 이어진다.

저녁을 겸한 편지 낭독 행사가 끝나자 하객들이 피로연 뒤편에 마련된 뜰로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지만, 결혼식은 오히려 이때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DJ의 안내에 따라 신랑과 신부가 춤을 추는 것으로 본격적인 피로연 파티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신부는 자기 가족인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과 춤을 추었고, 그 밖에 특별한 사람들과 춤을 추었다. 파티는 점점 흥을 더해가면서 부부나 연인들끼리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동안 DJ는 “결혼 1년차 이하는 빠져달라" “결혼 5년차 이하는 빠져달라"고 하자 결국 맨 마지막에 가장 결혼 생활을 오래한 커플이 남아서 춤을 추었다.
 
DJ는 결혼식 파티 분위기를 흥겹게 이끈다.

결혼식 DJ의 진행 능력에 따라 결혼식 분위기가 확 달라지기 때문에 실력 있는 DJ를 잘 섭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결혼식 DJ의 경우 50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조카딸의 결혼식 피로연을 맡은 DJ는 능수능란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DJ가 트는 음악에 따라 하객들은 디스코를 추기도 하고, 블루스를 추기도 하며, 단체로 동작을 맞추어 춤을 추기도 했다. 남녀노소가 어울려 춤을 추고, 심지어 주례를 본 목사님까지 흥겹게 노는 모습이 필자의 눈에 상당히 신기하게 보였지만, 바쁜 사람들이 이렇게 온 종일 신혼부부를 축하는 모습을 보니 잊어버렸던 우리네의 옛날 잔칫집 풍경이 떠올랐다. 미국의 결혼식에서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흥겨운 잔치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피로연 파티 이모저모.

피로연 파티 이모저모.

밤 11시까지 이어진 파티. 신혼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하루를 기꺼이 투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객들의 흥이 함참 오르자, 신부의 부케 던지기 행사가 진행됐다. 조카딸은 부케를 던질 듯 말 듯하더니, 잡자기 자기 남동생의 여자 친구에게 달려가 부케를 안겼다. 그러자 동생은 그 자리에서 여자 친구의 손에 약혼반지를 끼워주며 청혼을 했다. 여자 친구는 수많은 하객의 박수 속에서 환호와 눈물을 흘리며 청혼을 받아들였고, 둘은 분위기 있는 음악에 맞춰 한참 동안 춤을 추었다. 피로연 파티는 11시가 되어서 끝이 났다.  
 
결혼식 다음날, 조카딸은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전달했다. 가까이서 본 미국의 결혼식 모습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결혼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조카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잘 살아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입력 : 2019-04-11]   이상흔 기자 mor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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