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 이슈

Leader's Big Picture

"창의력이 필요하다고요?"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창의적인 이미지를 대할 때 더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게 될 수 있다"

글  이수정 아인아르스 대표·작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개인적으로 주성치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뇌를 식혀야 할 때 그가 나오거나 연출한 작품들을 본다.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평가할 그의 영화는 생각이 없이 보기도, 혹은 철학적 사색을 하며 보기도 좋은 양면성을 가진 영화다. 2016년 개봉한 <미인어>는 주성치가 감독 연출한 영화로 생태 환경에 대한 그의 고민을 인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로 풀어냈다. 중국에서는 흥행몰이를 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작 4270명이 관람했다니 아쉬운 일이다.
       
오늘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어'라는 기호(기표)에 대하여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의에 새롭게 접근한 인상적인 장면에 관한 것이다.
  
참고로 기표와 기의란 소쉬르가 정의한 기호의 근본을 이루는 두 성분이다. 조금 복잡한 내용이긴 하나 이응에 모음 이, 받침 니은과 이응에 모음 어(ㅇ+ㅣ+ㄴ, ㅇ+ㅓ)로 표기된 '인어'를 기표(記標)라고 한다면 '인어'라고 말했을 때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와 그 해석(인어·상반신은 사람의 몸,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하였다는 전설상의 생물·두산 백과)을 기의(記意)라고 생각하자.
         
영화의 주인공인 류헌은 젊은 부동산 재벌이다. 그는 청정지역인 청라만을 개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곳에 살고 있던 인어들은 그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인어 '산산'의 미모를 이용해 그를 꾀어 죽이기로 한다. 예상대로 류헌은 산산이 인어임을 모른 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우연히 인어의 세상을 목격한 후 혼비백산하여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를 한다.
        
두 명의 경찰 앞에 앉은 유헌은 자신이 인어들에게 납치가 되었다가 도망나왔다고 말하자 경찰은 “인어라고요? 인어가 뭔가요?"라고 되묻고 류헌은 “그 왜 있잖습니까?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라고 말한다.
        
그러자 한 경찰이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이렇게 생긴 것 말입니까?"하고 그림을 그려주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기의와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린다.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라... 이런거 말입니까?"
      
좌우로 나뉜 인어의 그림을 본 유헌은 답답해하며 "좌우가 아닌 위아래로 나뉜 인어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경찰은 다시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며 "이렇게 생긴 인어 말씀이시군요?"라고 말한다.
  
“아! 좌우가 아니라 위 아래로 나뉘었다고요..."
          
유헌은 답답해하며 몇 번을 다시 이야기 하지만 좀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자연스럽게 예전에 보았던 마그리트의 <집단적 발명>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주성치가 어쩜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어 이 장면을 연출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마그리트의 그림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물론 메트릭스의 워쇼스키 자매 감독들과 수없이 많은 후대인들에게 영감을 준 화가이기 때문이다.
 
'Collective Invention'. Rene Magritte, 1934, 73.5 x 97.5 cm, oil on canvas,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미술전시관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 화가다.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의 소재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만나는 오브제들이다. 그러나 그런 오브제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자연스러운 맥락에서 벗어나는 배경에 놓이거나 관습적인 사고를 깨버리는 조합으로 그려짐으로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 기묘한 느낌을 준다. 마치 인어 하면 상반신은 여성의 몸, 하반신은 물고기라는 관습적인 사고를 깨 버린 것처럼 말이다.
   
미술에선 이런 기법을 데페이즈망(depaysement·전치)이라고 부르는데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비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융합, 컨버전스, 통섭, 퓨전, 하이브리드 등의 개념도 이런 데페이즈망적인 결합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Attempting the Impossible'

'Decalcomania'

미술평론가 사란느 알렉산드리안은 마그리트가 사용한 데페이즈망 기법의 주요 형식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1. 친숙한 사물의 크기를 과장하거나 크기에 변화를 주는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하기'
2. 상관관계가 별로 없어 보이는 사물들을 한 공간에 병치하고 결합하는 '보완적인 사물을 조합하기'
3. 사물에 운동성을 부여하는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기'
4. 시간이나 공간을 비틀어 확장하는 '미지의 차원을 열어보이기'
5. 생물의 운동감을 없애 무생물로 변형시키는 '생명체를 사물화 하기'
6. 대상물의 본래 형태를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는 '해부학적 왜곡'이다.
 
 
왼쪽 그림 'The Red model'은 ‘5번 생명체를 사물화하기’, 오른쪽 그림 'Clairvoyance(Self Portrait)'은 ‘4번 미지의 차원을 열어 보이기’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마그리트의 이런 상상력들은 지금 이 시대의 비즈니스 발상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굳이 이곳에 나열하지 않아도 비즈니스 발상에 대한 자료는 무궁무진할 테니 약간의 수고만으로도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로 설명된 발상기법들이 가지는 한계는 그 기표가 담고 있는 기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끄 라캉이 말하길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진다고 했다. 철학적인 담론을 제외하고 거칠게 이해하자면 의사소통에 있어서 기의를 충분히 전달하기에 기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완벽하게 텍스트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글로 된 발상기법을 대할 때보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창의적인 이미지를 대할 때 더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키아트(www.wikiart.org)에 접속해 Rene Magritte를 검색해보자. 370여 점의 작품이 우리의 창의적 사고의 원천이 되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벨기에 브리셀에 위치한 마그리트미술관이 문을 열기도 전에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마그리트의 밀납 모형이 생생하다.
 
 
 

[입력 : 2018-08-10]   이수정 아인아르스 대표·작가 more article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sns 공유
    • 메일보내기
Copyright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댓글
스팸방지 [필수입력] 왼쪽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포토뉴스

Future Society & Special Section

  • 미래희망전략
  • 핫뉴스브리핑
  • 생명이 미래다
  • 정책정보뉴스
  • 지역이 희망이다
  • 미래환경전략
  • 클릭 한 컷
  • 경제산업전략
  • 한반도정세
뉴시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