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전략은 한마디로 스스로 '사명을 끝마쳤다'고 한 풍계리·동창리 검증이나 고철이나 다름없는 영변 플루토늄 시설 동결 정도로 대북 제재 허물기에 나서는 것이었다. 비핵화하는 척 시간을 무한정 끌면서 제재만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하려는 비핵화의 간격이 너무 컸다. 북한은 미국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핵화만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트럼프의 판단은 너무나 당연했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자신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의회 청문회 증언으로 정치적 코너에 몰린 상황때문에 당장 외교적 성과에 급급한 적당한 수준의 ‘나쁜 거래’를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는 결국 미국 정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판임이 드러났다.
한편 이번 회담 결렬에는 현 정권의 책임도 결코 적지 않다. 국제사회의 공조를 무너뜨리는 성급한 제재 해제와 ‘신한반도 체제’ 언급으로 북한의 기대만 키워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무한 신뢰하며, 마치 CVID가 금방 가능할 것처럼 국민들에게 '장미빛 환상'을 심어 주고, 철도·도로 연결,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온갖 남북 협력사업을 외쳐온 것을 냉정히 반성해야 한다. 외교 협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편의적 낙관론(wishful thinking)’에 사로잡혀 남북관계 개선에 몰두하다 보니 미국과 계속 엇박자를 냈고 이것이 북한 오판의 주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통해 한반도를 통일과 번영의 길로 인도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북핵 담판이 사실상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회담’처럼 일시적인 회담 무산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더 크고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묘안은 과연 있는가?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리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대로 결국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다. 바로 '핵·경제 병진노선'으로의 회귀다. '핵포기-미국과의 협력'이 아니라, '자력갱생-중국과의 협력'으로의 길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 철저한 국제공조와 강력한 압박으로 북한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만큼은 정말 북한을 '검증 가능한 핵 폐기'냐, 아니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냐의 기로에 세워야 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한이 결코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단호하게 경고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사찰과 검증을 받는 동시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라는 것은 국제사회의 최소한의 요구자 협상의 마지노선이다. 그럴 때만 비로소 대북 제재가 풀리고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이번 회담의 유일한 성과는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의 말이 얼마나 거짓인지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확인한 것이다. 아울러 북한에게 진정성 없는 비핵화로는 제재 해제는 물론, 부분적인 완화마저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점이다.
김정은이 진심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걷어내고 정상국가로 나가길 바란다면 더 이상 살라미(salami) 협상 전술로 국제사회를 기만해선 안 된다. 우라늄 농축시설과 수십 개의 핵폭탄을 전부 불가역적으로 폐기하지 않는 비핵화는 모두 사기극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식이다.